한국불교 태고종 중앙종회의장 원봉스님(청주 보현사 주지) 대담

▲ 한국불교 태고종 중앙종회의장 원봉스님(앞줄 가운데). ⓒ천지일보(뉴스천지)

난국일수록 이치와 도리 살펴야 만인의 스승, 승려 본분 엄중히 지켜야


[뉴스천지=손경흥 시민기자] 태고종 종단 개혁 및 중흥 원년을 맞아 중앙종회의장 원봉스님은 일갈한다. 중앙종회는 종헌종법 제·개정 및 예결산 심의는 물론 종단 기본재산 처분 승인, 각급 종무기관에 대한 감사 및 조사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종단 최고 입법의결 기관이다. 종도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구로 종단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기강을 확립하며 종단 살림살이를 수립하는 막중한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종단 각종 현안 수습에 중앙종회가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 귀한 시간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경인년 새해를 맞아 종도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인년 새해를 맞아 종도 여러분들의 법체 청안하심과 수행교화 원만성취 하심을 기원드립니다. 요새 세간에서는 다들 세상살이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사바중생의 삶이란 늘 어려웠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복잡하고 각박한 건 사실입니다. 그럴수록 넓고 푸근한 마음으로 슬기롭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고통 없이 성취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특히 만인의 스승이라 자부하는 승려들은 사회의 사표로 더욱 의연하게 참 진리의 길을 선도해야 할 것입니다. 불퇴전의 견고한 신심으로 수행 정진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지난해 종단은 여러 현안들로 어려운 시간을 겪었습니다. 올해는 실추된 종단 위상을 꼭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종단의 현주소와 향후 중흥발전의 비전에 대해서 중앙종회의장스님의 견해는 어떠한지요

구체적 현안 하나하나에 대해 재차 왈가왈부할 시점은 지났다고 봅니다. 이제 종단은 매사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해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세상살이의 기본 이치와 상식을 지키자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포함한 종도 각자가 승려로서의 본 분사를 새삼 돌아보는 기본 도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종단 스님들이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신심이 약해졌고, 스스로 자기의 위상을 끌어내리는 일도 종종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종단에서 조석예불을 엄수하는 사찰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부터 돌아보자는 말입니다. 자신의 언행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해 주변의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종단이 어려운 근본이유는 여기에 있고, 따라서 종단중흥의 요체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야 보살도 정신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다른 사안은 차치하더라도 종단 부채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어떻게 모색해 볼 수 있겠습니까

당장의 문제는 종단 부채해결이라고들 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만, 이 문제는 좀 단순화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이란 게 허공중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분명히 빌린 사람과 사용처가 있을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 누가 빌려서 어디에 썼나를 명확히 하면 해결 포인트가 나오는 일입니다. 결국 이걸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것인데, 부채수습대책위원회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안 당사자들의 결단이 선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자면, 종단 공적인 일에 소용되지 않은 돈은 종도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원칙은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적 절차를 어겼다면 어긴 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면 되는 일이고, 권한을 남용한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을 물으면 되는 일입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란 게 현실입니다. 누구나 다 잘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독단이나 실수나 무관심이나 책임방기 따위가 그냥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종단 부채도 사안별로 성격이 다릅니다. 담백하고 빈 마음으로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일입니다.

- 이와 관련 중앙종회에도 일정 책임이 있다는 여론입니다

중앙종회가 의결 감사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했음은 분명합니다. 식물 종회니, 시녀종회니, 거수기관 운운하는 말들도 들었습니다. 삼권분립이 실제적으로는 확립되지 못한 종단 현실이 그 배경일 것입니다. 종회기능을 정상화시키려면 풍토 및 제도개혁이 절대 요망됩니다. 종회의원은 종도를 대의한다는 자긍 내지 책임을 더 절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종도들은 내가 종단의 주인이라는 애종심을 더 확고히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관례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제도개혁은 더 구체적입니다. 제도개혁위원회의 활약상을 종도들이 주시, 지지해줘야 합니다. 종헌종법도 오랫동안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총무원장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들도 있습니다. 징계법도 자의적으로 호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악법들이 오히려 종단 권위를 실추시킵니다. 사회의식이 바뀌고 시대흐름이 변하면, 종단도 바꿀 것은 바꾸고 변해야 하는 부분은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봅니다. 명실상부 선진화된 종단을 위해 종회가 앞장설 것입니다.

- 종단이 최근 들어 잦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원인은 어디 찾아야 합니까


무엇보다 불교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게 흔들리거나 전도되면 이상한 모습들이 연출됩니다. 이론을 밝혀 하는 게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서 행하는 것, 이게 불교입니다. 이론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가슴에 앞서서는 안 됩니다. 승려와 불교학자가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불교의 핵심,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는 자비에 있고, 자비는 실천에서 드러납니다. 자비행이 없는 자비는 말라빠진 껍데기일 뿐입니다. 불교는 대비원력에서 비로소 출발합니다.

작금의 여러 일들에서는 이 점이 망각되고 호도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승려는 대비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보살도를 지향하는 태고종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력이 메마르면 힘이 안 납니다. 그냥 내 일신 호의호식하자면 왜 굳이 삭발염의를 합니까.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 수행정진 기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태고종 스님들은 언행이 일치하고, 교화에 열심이며,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다’는 평판이 나올 수가 있어야 종단이 바로 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부터’라는 결단으로 이를 이뤄내야 합니다. 과거 큰스님들은 이에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분들입니다.

- 지난해 보현사 개산 49주년을 기념해 3억 원의 기금을 내놓아 장학회를 만드셨죠. 출가수행 60년을 반추 정리하는 법문집도 내셨고요. 제목이 ‘회향’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책에서 ‘고통을 이겨낸 자리가 열반’이라고 역설하셨더군요

입산 60년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인생항로에서 고통을 이겨낸 자만이 승자가 되고 즐거움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무한한 고통을 이겨낸 그 자리가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의 자리, 즉 열반이지요. 요즘은 승속을 불문하고 너무 편하게, 쉽게 살려는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노파심이 있습니다. 편하면 편할수록 더 편해지고 싶은 게 사람의 속성이자 한계입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도 있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나친 편함이 우리 몸과 마음을 갉아먹지 않나 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합니다. 고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내가 11살 때 절에 들어가 음성 신흥사 중창 불사에만 20년, 35세에 청주로 나와 반야정사를 중심으로 하는 불사 및 종무원 일에 20년, 49세에 보현사 주지를 맡아 절을 일으키고 또 중앙종회 의원으로 종단 일을 돌보며 20년 등 지난 60년 동안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고 살았습니다. 그때그때 꾸려가고 갈무리한 삼보정재는 이제 다 회향하고 현재 내 개인 재산은 한 푼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무(無)에서 유(有)를 이루고, 다시 무(無)로 돌아간 상황인데, 다시 빈손으로 돌아간 오늘날이 한없이 홀가분하고, 뿌듯합니다. 원력으로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내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동진 출가해 소위 학벌도, 크게 배운 바도 없고, 유명강원이나 선원을 거치지도 못했습니다. 스스로도 뭐 대단하거나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신심 하나로 인생의 바다를 건너온 늙은 승려일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무슨 일에나 원력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은 젊은 후학들에게 부끄럼 없이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몸으로 직접 행했기에 참의 공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위에서도 이 점만은 저를 인정해 준다고 믿습니다.

- 지역사회 활동도 활발히 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 포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희망이자 새싹이지요. 또 아이들이 좋았습니다. 80년대부터 반야유치원, 반야어린이집 등을 운영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현재 종교법인 보리수어린이집, 장애인 사회복지법인 보현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인복지에도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인연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상좌인 혜성스님이 이쪽으로 원력을 세워줘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역사회에 기여한 만큼 음으로 양으로 돌아오는 것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 살아가는 이치라 생각합니다.

- 이치라는 말씀에 생각이 납니다.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각 후보 진영 간 갈등양상을 초법적 형식으로 풀어 선거를 원만히 치러낸 일이 있었지요. 특별한 경우 승가가 반드시 법치로만 운영될 수는 없다는 선례를 남겼는데


맞습니다. 그때도 이런저런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다 일리는 있지만, 당시 종회의장 대행으로 저는 이치와 도리와 상식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법규 몇 조 몇 항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궁극적으로 부처님 정법은 이치와 도리와 상식에 있지, 현란한 논리나 수사학, 또는 사람 간에 만든 법규나 규정에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냥 생각해 보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향후 종회운영에 있어서도 이 기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누구의 상식이냐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남습니다만, 방향은 그쪽입니다. 종단 현안의 해결점도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전종도와 불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죠

전통종단 한국불교 태고종의 위상을 높이는 한 해가 되도록 전종도가 일심으로 단결하고 수행하도록 종회의장으로서 당부드립니다. 아이티의 지진피해를 한국의 불자들이 도와줘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걱정하고 나누는 참다운 불자가 돼야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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