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神과 관련된 상서로운 징조의 표상

신화에서 하늘과 관계있는 흰 기운과 흰 산(白頭山), 흰 새, 흰 동물(白鹿)들이 곧잘 등장합니다. 고구려의 주몽은 흰빛이 유화부인을 비춤으로써 태어났고, 신라의 박혁거세도 흰 말이 절하는 곳의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알지(金閼智)가 놓여 있던 황금 궤 아래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습니다.

신화적으로 흰색은 출산과 서기(瑞氣),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흰색은 상서로운 징조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단군이 나라를 열어 그 국호를 조선(아침 朝, 밝을 鮮)이라고 한 것에서도 평화와 밝음을 숭상한 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희고 깨끗하고 밝다는 태양숭배와 경천사상에 따라 사상이 형성되고 민족의식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요,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완벽한 색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화시키는 그야말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원초적인 색을 뜻합니다.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흰색을 상서로운 색으로 숭상한 데서 온 것입니다. ‘위지 동이전’에는 ‘변한ㆍ진한ㆍ부여 때부터 우리 민족이 흰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장터 입구마다 일제는 커다란 먹물 가마솥을 걸어놓고, 흰옷을 빨아 입고 장에 들어서는 우리 민족에게 먹물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거리 어느 곳에서나 모두 흰옷을 입은 우리 민족의 모습은 일제가 볼 때 소리 없는 항거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고분에도 백호가 그려져 있으며, 흰옷을 입은 우두신인도 장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의 평상복은 학창의라 합니다. 고결하고 숭고한 학의 흰 모습을 본떠, 학을 닮은 이상적인 선비의 기상과 잘 부합된다고 믿은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실, 흰색을 숭상한 것은 우리 민족만이 아닙니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한 티베트 민족들도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세례를 받은 자는 빛나는 흰옷을 입었습니다. 백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하러 온 천사가 입었던 옷이요, 흰색은 계시와 은총과 변모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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