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3년 전 이때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필자는 본란에서 ‘국민은 평온무사(平穩無事)를 바란다’는 제하의 칼럼을 썼다. 첫 시작은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1986∼)로 시작했던 바, 그 이유는 그 당시나 지금도 그가 세운 육상 100m와 200m 부문의 세계신기록이 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종목에서 ‘세계 최고’가 된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우사인 볼트는 “훈련, 또 훈련 그것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취임한 첫날에 굳이 육상선수 이야기를 언급했음은 선수가 욕심이 지나쳐 흔히 ‘오버 페이스 할 수 있는 여지(餘地)를 감안해 박 대통령만큼은 초심을 잃지 않고 평상심으로 국정을 잘 운영해 달라는 국민바람을 전하고 당부함이었다. 다시 말하면 국민 모두와 함께 지향하는 새 정부의 목표점 노정(路程)이 100m, 혹은 200m라 한다면 당장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다면 오버 페이스(over pace)해 죽도 밥도 안 되니 국민들이 그저 편안히 마음 가질 수 있고, 현재의 삶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평범한 부탁이었다.

애당초부터 국민들은 파천황(破天荒)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역대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새 정부가 처음으로 이뤄내 국민들이 태평가를 부르면서 잘 살게 해달라는 것보다는 현실생활에서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갖게 하고, 어려운 세계경제 속에서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평온무사(平穩無事)함을 기대하고 당부했던 것인 바,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이 지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같은 국민 염원이 이루어졌는지는 속단할 수 없다. 

정부가 출범한 초기 내내 정부인사의 난맥상이 불거지고, 소통(疏通)의 미진함이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지적되기도 했다. 또 경제활성화마저 지지부진하는 사이 느닷없이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가 터져 나왔고, 이로 인해 국민들은 많은 불편 속에서 불안한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일부 층들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19대 국회의원들이 정부정책을 뒷받침하지 않아서이지 정부의 진정성(眞情性)을 믿으며 일말의 기대를 걸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는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박근혜 정부의 3년이란 세월은 경제난과 사회갈등, 극심한 안보 위협 시대를 걸머쥔 양상이 되고 말았다.

잠시 화제를 바꿔, 요즘 건강을 위해 운동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일상에서 운동을 생활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같은 현실에서 누구라도 하기 쉬운 100m 뛰기는 힘이 부친다. 설령 육상 선수라 하더라도 평상시 계획적이고 부지런한 연습량이 없다면 기록 경신이 어려운 실정인데, 200m거리는 더욱 더 그렇다. 충분히 연습했을지라도 페이스를 늦추면 기록이 부진할 테고, 욕심을 부려 오버페이스가 되면 경기마저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니 우사인 볼트는 “훈련, 또 훈련 그것뿐이다”라 했던 것이다.

올해 30세인 우사인 볼트는 지난해 베이징 세계대회에서 100m와 200m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당초 내년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정했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현역으로 뛰겠다”고 결심을 바꾼 그에게는 많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철학이 있다. “전력질주를 하기 위해서는 긴장해서는 안 된다. 100m 경주에서 일단 어느 수준에 이르면 더는 속력이 붙지 않는다. 마지막 40∼50m는 그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은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몸이 뻣뻣해지고 속도가 줄어든다.” 이 말은 ‘인간 탄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최고 선수가 갖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행동률이다.  

우사인 볼트 이야기는 최고의 비결은 평범함에서 나옴을 시사하는 바 우리 국가·사회에서도 다르지 않다. 공공을 위한 긴 여정(旅程)에서 코스 적응이 안 되면 기록이 부진하려니와 오버 페이스가 우려된다. 이제라도 세심히 분석하고 궤도를 수정해 함께 가는 길이 편하게 해야 하고, 혹 어려운 과정이 앞에 있을지라도 그 정황들을 동행자들에게 제대로 알려 리더의 진정심을 믿게 만드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처음부터 국민은 파천황(破天荒)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지난주 박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통해 ‘위기 돌파구 힘이 국민’이라며 국론 결집을 호소했다. 그걸 보면서 필자가 느껴지는 게 있었으니 정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정치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묻는 제자의 말에 “足食, 足兵, 民意”라 답했다. 즉, 식량을 충분하게 하고, 군비를 충분히 하며, 백성이 정치를 신뢰하도록 하는 게 근본임을 알려주었다. 경제 불황, 사회 갈등, 안보 위기 등 난국(難局)을 맞은 박근혜 정부가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민의를 바탕으로 사회화합과 국가안위를 다져나가는 일이 급선무인 바, 문제는 시기상 오래지 않아 레임덕 현상이 찾아온다는 우려다. 이마저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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