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입시철이 지나고 나면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린다. 어느 대학 어느 고등학교에 누가, 몇 명이나 진학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적어 넣기도 하고 진학에 성공한 학교별로 학생 숫자를 나열하기도 한다. 현수막은 학교뿐 아니라 학원가에서도 목격된다. 현수막의 정보가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좋은 학교에 많이 보냈다고 하는 학원의 인기가 높아진다.

학원이야 입시로 돈벌이를 하는 곳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학교 정문이나 담벼락에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마당에 굳이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소식을 전달하거나 공유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대놓고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동네방네 다 알려 칭찬받고 싶기 때문이다.

꼴불견 현수막은 그것만이 아니다. 동네 곳곳에 걸린 아파트 분양 광고나 땅 투기 현수막도 있고,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보면 기가 차는 집단 민원을 알리는 현수막도 있다. 가로수나 전봇대 사이에 내걸린 집단 민원 현수막은 대부분 불법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여긴다.

상급기관이나 지체 높으신 분이 오신다며 환영의 현수막을 내거는 집단도 있다. 잠시 한 번 걸고 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고 말 현수막을, 국민의 세금으로 그렇게 낭비하는 것이다. 높으신 분 오시기 전에 우르르 몰려 나가 일렬로 도열한 다음 재빠른 동작으로 자동차의 뒷문을 열어주고 일제히 머리 조아려 인사해야 제 할 일 잘 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사교육 열기가 높은 동네에서는 입시철이 지나면 엄마들의 서열이 달라진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니고, 그렇지 못한 엄마들은 풀이 죽어 지낸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엄마는 입시학원의 상담 실장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은 엄마의 기막힌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자식 덕분에 엄마는 돌연 학원가의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고, 사람들은 꿩 먹고 알 먹었다며 부러워한다. 

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도 진학 때문에 희비가 갈린다. 졸업식 순서를 알리는 종이 쪼가리에도 소위 명문학교에 진학한 학생들 이름이 주르르 적혀 있다. 제 자식 이름이 올라 있는 부모는 어깨가 으쓱하고 자식이 예뻐 죽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 가슴에는 찬바람이 몰아친다. 그렇잖아도 추운 졸업식 날, 더 춥다. 상을 받는 것도 모두 좋은 학교 진학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차지고, 내 자식은 박수나 쳐주는 들러리 신세라고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지역 국회의원까지 나서 상을 주는 꼴은 추태의 극치다.

좋은 일에 박수 쳐주고 잘 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칭찬도 해 주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게 염치 있는 짓이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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