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이번 설날 연휴 동안 밥상머리에 정치이야기가 꽃을 피웠다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골치 아프고 비생산적인 정치이야기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귀향길에서 또는 차례 마치고 오르는 귀경길이 장도(長途)다 보니 함께 머무는 시간도 짧은데, 그 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가족끼리 모여앉아 윷놀이하거나 다과를 들면서 덕담을 나누는 정도지 귀중한 시간에 가족끼리 정치이야기 한다는 게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인들이야 20대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쫓아다녀야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바삐 살아야 할 보통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별로다. 그 현상이 이번 설 연휴기간 여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제발 정치싸움 그만하고 경제를 살려라”는 질책이 주류를 이룬다. 기득권에 묻혀 정치싸움만 하는 여야가 싫다는 것이니 정치를 외면하는 ‘정치혐오증’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소위 무당층의 증가다.   

지난해 말부터 총선과 관련해 대구지역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출마하는 대구 동구을과 거물급 양김(兩金)이 맞붙은 수성갑 지역구다. 진박(眞朴) 소동으로 시끄러운 대구 동구을도 관심사이지만 달구벌매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수성갑 지역은 전국 최대격전지 중 하나로 점쳐지고 있는 곳이니 벌써부터 열기가 넘쳐난다. 필자가 며칠 전 수성갑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는 바, 두 사람의 대형사진이 찍힌 현수막이 수성구 범어네거리에 나란히 붙어 있어 과연 빅 매치(Big Match)답다는 이야기다. 

여론의 추이를 보면, 지난해 양김 대결이 이루어진 이후 판세는 김문수 전 지사가 김부겸 전 의원에게 밀리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여론조사 결과 등록(SBS가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실시) 자료에 의하면 김 전 지사는 28.3%, 김 전 의원은 50.1%로 나타나 있다. 또 YTN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김 전 지사 30.8%, 김 전 의원 52.5%로써 김 전 의원이 앞서지만 대구가 새누리당 텃밭이다 보니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김문수 전 지사는 지금은 비록 밀리고 있지만 막판 뒤집기를 바라며 열심히 뛰고 있고, 김부겸 전 의원은 이 상태로 선거가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걱정하면서 고삐를 죄고 있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대구에서도 야당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낸다는 김 전 의원은 “지난 20년 대한민국 산업구조가 바뀌는 동안 충청도는 산업을 고도화하고 GRDP(지역내총생산)를 전국 2위까지 올려놨는데, 대구는 정치적인 경쟁도 없고 변화에 둔감하다 보니 대기업 유치만 쳐다보다가 가라앉았다는 얘기들이 많다. 이제는 우리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다른 지역처럼 큰소리도 내고 죽기 살기로 해서 대구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로 일관하면서 대구시민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동정심에도 호소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대구지역은 각종 삶의 질 지표에서 최악의 도시임이 증명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의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2014년 기준 1894만원. 16개 광역시도 중 20년 연속 최하위다. 매년 1만명꼴로 일자리 찾아 대구를 떠나고 있고, 인구도 2010년 말 253만명에서 지난해 말 248만명으로 5만명 가량 줄었다. 이같이 대구가 과거에는 서울, 부산에 이어 실질적 제3의 도시로 자리매김했지만 여당 텃밭이 되고부터 공교롭게도 낙후된 바, 이 모든 결과물들이 TK(대구·경북) 여당 정치인들이 무능하고 무관심해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런 전제라면 다른 사례들을 한번 보자.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대구지역 교통사고는 인구 1만명당 57.6건으로 전국 대도시 중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전국 교통사고 상위 지역 5곳 중 3곳이 대구 관내이고 상위 20곳 가운데 무려 7곳이 포함됐다. 더 심각한 것은 소방차사고율 1위라는 점이다. 지난 5년간 화재 구조·구급 현장으로 출동 중에 사고를 당한 차량이 203건인데, 현재 대구시 소방차량 300대 중에서 67%가 교통사고를 겪은 셈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시민단체가 나서서 ‘교통 최악도시’란 불명예 없애자며 캠페인에 나섰을까.

이런 현상까지도 TK국회의원들이 잘못해서가 아닐진대, 정치인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유리한 입장만 내세우는 것이다. 앞의 내용처럼 엉망진창 현실임에도 대구 정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총선 예선전을 앞두고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 다툼이 한창이고, 친박 내에서는 진박타령으로 연일 시끄럽다. 설 연휴 기간에 들려온 국민여론은 국가안위 걱정과 함께 ‘경제를 살려라’는 질책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지역에서 들려오는 말인즉 “경제는 만년 꼴찌인데 진박타령이 신물 난다”는 것이니, 이것은 민심의 회초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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