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동학대의 문제와 심각성이 크게 부각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다음 시신을 11개월 가까이 미라 상태로 집에 방치한 목사 아버지와 계모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 성탄절을 즈음해서는 굶주림에 시달린 맨발의 어린 여자아이가 가스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한 후 동네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발견된 사건도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게임 중독에 빠져 2년간 딸을 감금하고 학대했다고 한다. 온 국민이 경악할 만한 사건들이었다. 그밖에도 각종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이어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2010년에 9199건이었던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2014년에는 1만 7791건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물론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서 신고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도 말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뿐더러 아직도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수준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지속되고 있어서 훈육이라는 이름하에 아동학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도 무척 많다. 교육 현장에서도 선생님들이 학생을 지도할 때 자신이 흥분되거나 화가 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마침내 폭력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곤 한다.

따라서 아동학대는 결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이웃과 학교에서 혹은 우리 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즉 부모인 나조차도 심리적 불안정 또는 불만족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이를 자녀에게 전가하거나 화풀이를 하여 결과적으로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음을 명심한다. 따라서 올바른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부모는 항상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낳은 혹은 내가 기르는 아이니까 내가 알아서 나의 방식대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무척 위험하다. 아동학대를 겪는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들과 후유증은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각하다.

신체 학대를 받은 아이는 신체 일부의 변형, 피부의 결손, 자상, 화상, 기능 손실(예: 청력 저하, 시력 저하, 대소변 조절능력의 저하 등), 발육 부진 등의 신체적 후유증 외에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 과잉행동, 주의집중력 저하 등의 정신·행동적 증상을 보인다. 정서 학대를 받은 아이는 불안, 우울, 죄책감, 자아존중감의 저하(또는 자기비하), 대인관계에서의 불신과 의심, 분노, 적개심 등을 보인다.

성 학대를 받은 아이는 우울한 기분을 자주 보이는데, 이때 수치심과 죄책감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영원히 손상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성 학대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충동 조절의 어려움과 함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나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성 학대의 경험 자체가 향후 공포증, 불안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해리장애의 발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방임의 아동학대를 경험한 아이도 성장 부진, 불안, 무기력, 자존감의 저하, 지나친 수줍음, 학습 부진, 사회적 기술의 부족 등을 흔하게 보인다.

아동기는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인데, 이 시기의 심한 신체적, 정신적 외상 경험은 뇌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학대와 방임은 아동기 외상의 가장 심한 형태로서 스트레스 관련 생리적 반응(신경내분비, 교감신경)을 비정상적으로 흥분시킴으로써 정상적 뇌 발달을 저해한다. 이와 같이 아동의 일생을 망칠 수 있는 아동학대를 단지 부모 또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보다 힘이 더 세다는 이유로 저지를 권리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가? 아동학대는 심각한 범죄로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이제부터 아동학대의 예방에 힘쓰자. 또한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아동학대를 근절시키고, 피해 아동의 치료를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강화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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