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지난 주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워싱턴의 체육관을 찾아 대학농구경기를 위한 깜짝 TV 해설을 했다는 보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포츠광이라는 사실은 취임 무렵부터 알려졌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모습을 보일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시구를 한 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퇴장하는 예전 대통령의 모습에 익숙한 터였으니 말이다.

제법 농구전문가다운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헤드폰을 끼고 아나운서, 캐스터와 함께 어려운 농구전문용어까지 써가며 깊이있는 해설을 해 참신한 맛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 머라이즌센터에서 열린 조지 타운대와 듀크대 간의 라이벌전 하프타임에 등장해 해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평소 농구광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두 번째 하프타임이 시작하자, 돌연 중계석에 등장해 머리에 헤드폰을 끼고 해설을 시작해 관중들을 열광케 했단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핀 무브(회전 드리블 동작) 등의 농구 동작 등을 설명하자, 장내 아나운서 중 한 명이 “아나운서가 될 의향은 없나”라며 농담까지 건넸다고 했다.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의 위업을 달성한 영웅으로서 근엄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훌훌 벗어던지고 또 한 번의 파격을 보여주었다. 고교시절 미식축구선수였던 제랄드 포드 전 대통령, 야구광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대부분 스포츠를 좋아하고 경기장을 찾아 시구 등 국민들을 상대로 한 이벤트를 펼쳤으나 오바마 대통령처럼 직접 전문가 수준의 경기해설을 한 이는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색다른 변신은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기회와 평등의 땅’ 미국의 진면목을 새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지체높은 대통령이라도 때에 따라선 농구해설자로 변신해 일반 국민처럼 평범한 자연인임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거리를 두는 대통령이 아니라 언제든 국민 곁으로 찾아가 웃고 떠들며 스포츠를 통해 여가를 즐기는 서민적인 대통령의 모습은 미국의 정치문화풍토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 대통령이라면 이런 자연스런 모습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여야가 극심한 대립 국면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국내 정치 분위기상으로는 대통령이 스포츠경기에서 오바마와 같이 파격적이지만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벤트를 만들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설사 대통령이 체육관을 찾아 경기 관람, 시구 등 예전의 대통령들이 해왔던 형태와 다른 이벤트를 하더라도 “이 판에 대통령이 한가하게 무슨 짓거리냐, 특정 경기인과 짜고 치느냐”라는 대부분 차가운 반응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예전 우리 대통령과 스포츠와의 관계는 대부분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연출됐다. 필자 경험으로는 역대 우리 대통령의 스포츠는 국민에게 근엄한 절대자의 모습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야구광인 정운찬 국무총리가 서울대 총장시절 프로야구 TV해설을 한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치적 연관성이 매우 깊다.

80년대 초반 스포츠 대통령으로 소문난 전두환 대통령은 유별난 스포츠 사랑을 보였다. 육군사관학교시절 축구선수생활을 했던 전 대통령은 축구광으로 경기장에 갈 때면 해박한 축구지식을 자랑했으며 박종환 감독이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달성할 때 하프타임을 이용, 국제전화로 직접 작전 지시를 했던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대부분의 프로복싱 세계타이틀전에서 승리한 복서들이 경기직후 흘러내리는 땀에다 피가 범벅이 된 가운데 청와대의 전 대통령과 연결된 특별 전화에서 “대통령의 큰 관심과 사랑으로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며 감격무량하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노태우 대통령 때는 한국이 결승에 진출한 일부 구기종목의 경우 대통령의 결승전과 시상식 참관을 위해 시간이 지연돼 국제 경기단체 관계자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스포츠인들이 스포츠의 올바른 가치와 규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해 스포츠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활용했을 때이다. 당시 일부 반정부인사들은 대통령이 스포츠 현장에 나타나기만 해도 “스포츠공화국을 만든다”며 색안경을 끼고 굴절된 모습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쿨’한 농구해설모습을 보고 대통령을 포함한 국내 정치인들은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했으면 좋겠고 스포츠인들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올바른 스포츠 문화를 가꾸고 키워 나가는 책임감을 새삼 깨우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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