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달 31일 올림픽축구 대표팀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세계축구 사상 처음으로 8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한 대표팀은 신태용 감독 이하 선수단 모두 고개를 숙여 “일본전에서 이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사과인사’를 했다. 귀국 전날 밤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리우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결승전에서 라이벌 일본에게 2-3의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의 표시를 한 것이다.

만약 일본전서 승리를 하고 개선 장군식으로 입국했다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듯하다. 팬들과 가족들로부터 공항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고, 언론들의 집중적인 취재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사죄 모습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니라고 본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도대체 왜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죽을죄를 지은 것도, 나라를 어디다 팔아먹은 것도 아니다” “이러지 맙시다. 창피하게 무슨 죄니, 스포츠는 그냥 즐겨라!”라는 의견들을 올렸다.

그렇다. 명승부를 펼쳤으면 그 자체로 즐겨야지, 결과를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공방전은 이제 거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유독 한·일전만큼은 경기 자체보다 승부에 너무 쏠렸다. 야구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섰듯이, 축구서는 일본보다 한국이 국제대회 성적과 라이벌 대결에서 우위를 지켰다. 최근 십여년부터 한국의 우세가 다소 흔들리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국민들 대부분은 축구는 한국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이번 한·일전서 양팀은 지난 수십년간 통틀어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한국이 먼저 2골을 넣고, 일본이 후반 3골을 넣으며 축구 경기에서 가장 팬들이 좋아하는 일명 ‘펠레스코어’를 연출했다. 일부 언론 등은 명승부를 펼친 한국이 ‘다 잡은 우승컵 뺏겼다’라는 등으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체력적인 열세로 잇달아 골을 허용했지만, 경기력 자체는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해외파 손흥민 등 주력 공격수들의 부재도 전력 공백으로 작용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정서로 본다면 한·일전서 한국이 패배하는 경우, 민족과 국가의 패배로 받아들인다. 과거 한국에 뼈아픈 식민지배의 고통을 안겨준 일본에게 진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일본을 스포츠에서 ‘주적’ 개념으로 상대하는 전근대적인 이념과 생각만 갖고서는 결코 세계화된 축구로 성장할 수 없다.

이제는 축구 한·일전도 일반적인 국제경기와 마찬가지로 특수한 양국 간의 역사적인 경험과 조건들을 넘어서 스포츠 자체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할 때는 진정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야 한다. 승부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좋은 경기를 위해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할 때, 스포츠팬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로 답해야 한다.

한국축구가 일본축구를 영원한 라이벌로 의식하는 한 현재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축구 경기력 향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축구 시스템을 선진화해 세계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이다. 한낮 국수주의 사고에 매몰돼 일본전 결과에 안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

축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축구 경기를 통해 일시적인 휴전을 했으며, 남한과 북한은 역사적인 청소년 단일팀을 구성해 1991년 세계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며 분단의 설움을 한때나마 잊기도 했다. 축구가 이념, 종교, 민족의 차이를 극복하고 세계인들의 소통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패에 관계없이 명승부를 펼치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가를 말이다. 한국축구가 진정한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이번 한·일전이 가져다 준 교훈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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