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김수복(1953~ )

사람과 사람 사이로 해가 지나듯
강물이 흘러
산등성이 가슴에 눈꽃이 피었다는 겨울 안부를
먼 바다 기슭에 나와 있는 저녁 동백꽃에게
잊지 않고 꼭 전해주러 가는 길

[시평]
나이는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진다. 마치 기다리지 않아도 해가 서녘으로 뉘엿뉘엿 지듯이, 아니 누가 무어라고 해도, 묵묵히 그저 흐르고 흐르는 그 강물과도 같이, 저절로 들고 들어, 자신도 모르게 어디론가 흘러가듯, 하나둘 들어가 쌓이는 것이 나이이리라.
그러나 나이란 그저 다만 머나먼 곳을 향해 흐르고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산등성이 가슴에 눈꽃이 피었다는 겨울 안부를, 먼 바다 기슭에 나와 있는 저녁 동백꽃에게 잊지 않고 꼭 전해주러 가는 길인 양. 이 삶에서의 기쁨과 아픔을 저기 저 다가오는 또 다른 나의 삶에게 옮겨가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잊지 않고자 새기며, 새기며 흘러가는 것, 이것이 어쩌면 진정 나이 듦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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