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며칠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아들이 소식을 보내왔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여기저기서 홍수가 났다는 내용인데, 온화한 기후와 적은 강수량으로 잘 알려진 도시에 오랫동안 겨울 폭우가 내렸다니 기상 이변이 닥친 것이다. 비단 미국 서부지역뿐만 아니다. 한겨울에 벚꽃이 만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던 워싱턴 DC 일대에서는 주말에 최고 시속 100㎞에 육박하는 눈보라 사태로 지하철과 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는 보도가 났고, 플로리다 주에서는 여름철에 발생하는 토네이도 현상이 한겨울에 발생해 주민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 같은 이상 기후는 슈퍼 엘니뇨(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 상승 현상)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국립항공우주국(NASA)이 최근에 밝힌 ‘2015년 지구 온도와 기후 조건 분석 결과’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는 세계 기후 관측 사상 지구가 가장 더웠던 해라고 한다. 1880년 근대적 관측 기록이 있은 이후 136년 만에 기온이 가장 높게 나타났는 바, 지구 전체뿐만 아니라 육지·바다 모두가 기존 최고 온도 기록을 갈아치워 ‘3관왕’이 됐다는 것이다. 그 현상인지 한반도에도 지난해 말까지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작년 12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3.5℃로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한 12월을 기록했다고 하니 이것만 봐도 기상 이변이 상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따뜻한 겨울나기 중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쳤는데, 원래 대한(大寒) 무렵이 1년 중 가장 춥긴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연일 최저기온을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기상대 말로는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진 틈을 타고 북극 한랭기류가 뚫고나와 남하해 한반도에 덮쳐 추위가 더욱 강력해졌다는 설명이다.

예전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계절에 맞지 않는 폭염이나 한파 등 기상 이변에 따른 각종 현상들이 우리 주변에 자주 나타나 지상의 동식물, 심지어 해상의 바다고기 서식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는 바닷물 온도가 상승해 사라져버렸고, 그 대신 제주도 연안에만 서식하던 희귀어종 다금바리가 해류를 타고 북진해 동해안까지 올라왔다는 보도가 났다. 이 모든 현상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서인데, 세계지도자들이 모인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세계적 합의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세계인들에게 큰 걱정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자연현상이 급변하는 가운데 기상 이변이 잦다보니 날씨가 중요 정보로 자리 잡는 세상이 됐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한낮이 돼도 영하권에 머물고 있는 날씨가 언제쯤 풀리나싶어 휴대폰으로 날씨 정보를 찾아보는 게 비단 필자만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당분간 동장군의 위세가 계속되겠지만 다음 주부터 2월이 시작되니 큰 추위는 이번이 마지막 고비가 아닐까 필자가 생각해보면서 움츠린 가슴을 펴본다. 한결 기분이 좋아져 잡상(雜想)의 시간도 가져본다.

시간이 흐르면 만물은 변하게 마련이다. 자연이든 사회제도든 일정 기간이 경과되면 어떻게든 변화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계절의 색깔을 갈아입으면서 자연은 예전과 다른 모양을 보일 테고,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삶의 방식과 사회제도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길 것이다. 하여간에 자연과 사회는 인간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이 되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간에 변화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은 누구든 부정할 수 없으리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변화를 수긍하면서도 필자 생각에 딱히 하나는 과연 변할는지 의문 나는 게 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스스로 변할 리 없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국내의 ‘정치현실’이다. 이 순간도 뉴스를 타거나 국민 입에 오르내리는 많은 정치적 사안들은 현혹적이고 화려하다. 정치인의 생각은 자나 깨나 공익을 위해 일하고 국민이 편하게 살며 행복해지는 방편을 찾아 나아간다고 치부(置簿)하겠지만, 좋은 정치로 인해 국민생활이 향상됐다거나 정치인에 믿음이 간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국민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 채로 변죽만 울리고 있는 현상(現狀)이 요즘의 정치판인 아닐까.

요즘 숨 가쁘게 쏟아지는 정치 뉴스들은 대부분 진부한 내용뿐이다. 야당의원이 16년 만에 여당에 입당했으니 4.13총선에서 부산 전석(全席) 승리를 장담한다거나, 경제민주화를 잘 아는 분이 수장으로 영입됐으니 경제몰이에 나서겠다는 말도 당리당략적 욕심으로 비쳐진다. 인류환경에 폐해를 끼치는 기상 이변처럼 못난 정치꾼들은 우리 사회에 정치적 엘니뇨를 만연시킨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잘못이듯 한국정치 후진성은 유권자들의 관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이제는 우리의 정치 판도를 변화·쇄신시켜 국민이 주인 되는 새 정치 장(場)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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