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윤경 성균관장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언급하며 “뜻이 같아도 다투면 소인배지만, 뜻이 달라도 화합하면 성인군자”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4개월간의 성과와 신년계획 밝혀
“성균관 정화돼 가는 과정에 있어”
인성교육 위한 공간 확보에 주력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최근 몇 년간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성균관장으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었던 최근덕 전 관장이 13억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2013년 검찰에 구속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고, 이후에도 3개월간 관장 직무대행자가 3번이나 바뀌었는가 하면 2014년 새로 선출된 서정기 전 관장마저 8개월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다시 직무대행 체제로 6개월을 보낸 뒤 정관을 개정해 후임관장을 선출했고, 지금의 어윤경 관장 체제를 갖춰 비로소 성균관이 혼란이 서서히 수습되고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지난해 8월 31일 제31대 성균관장으로 공식 취임한 이래 유교 수장 역할을 한 지 120일을 조금 넘긴 어윤경(79) 성균관장을 만났다. 어윤경 관장으로 그간 4개월간의 성과와 신년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13일 성균관장실에서 만난 어윤경 관장은 다정한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한없이 선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으나, 그 목소리에서는 마치 자신의 뜻하는 바는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당찬 의지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어 관장은 “새해에는 성현의 가르침이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서 더욱 힘차게 울려 퍼지길 염원한다”며 “유림의 지혜를 다시 집약하고 단합을 이뤄 사문(斯文)이 크게 진작되는 병신년을 만들 각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어 관장은 유림계에서도 참다운 유림으로 정평이 나있어 취임 당시 혼란스러운 성균관을 다시 정상화시키는 데 구세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로 큰 주목을 받았다. 어 관장 역시 많은 유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성균관을 개혁하고 재건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다소 성균관이 안정을 찾았다는 주변평가에 대해 어 관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살짝 한숨을 내쉰 그는 그래도 성균관이 정화되어 가고 있고 전국 향교의 전교들이 자신의 뜻을 대부분 지지해 주고 있어 힘이 난다고 웃어보였다.

◆유림회관 관리권 회복

어 관장은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선 크게 2가지를 들었다. 가장 최근인 지난 7일 성균관은 유림회관 사용과 관련해 ‘국유재산관리위탁계약’을 문화재청과 체결함으로써 이제 유림회관의 실질적인 주인이 됐다. 국유재산으로 돼 있는 성균관은 그간 재단법인 성균관이 관리해왔다.

어 관장은 “그간 성균관을 지원해야 하는 재단이 안팎으로부터 부실하고 불투명한 운영이라는 지적을 당해왔다. 많은 교육 공간을 민간 업자에게 내주고, 주인인 우리가 도리어 임대료를 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었다. 다행히 숙원이었던 성균관 유림회관 관리를 직접 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또 “이로 인해 앞으로 돈 때문에 성균관이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어 관장은 외부 임대를 최대한 제한하고, 성균관 본연의 목적 사업을 위한 교육공간으로 유림회관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비록 임대료로 얻는 수익은 많이 줄겠지만, 보다 알차고 보람된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들어서 있는 일부 민간 업자와 계약을 종료해야 하는데, 잡음이 생기지 않게 잘 조율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도 덧붙였다.

◆하련대, 성스러운 공간 복원 준비

나머지 하나인 문묘 관리사무소를 성균관 입구로 이전하게 된 점 역시 큰 성과로 평가했다. 현재 문묘 일원은 문화재청의 위임을 받은 종로구청이 관리하고 있어서 관리사무소를 하련대 옆에 두고 있다. 하련대는 과거 임금이 성균관에 알성하러 왔을 때 그 가마를 내려놓던 곳이다.

어 관장은 “이 곳을 가로막고 있는 건물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일단 사무소를 성균관 입구 쪽으로 이전할 것을 당국과 이미 합의 결정했다”면서 “하련대에 임금님 가마를 전시하면서 전향례를 올리는 원래 목적 그대로 모든 예(禮)가 시작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문묘 관리권 회복 등 중점 사업

신년 중점사업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를 언급했다. 먼저는 문묘 일원의 관리권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문묘의 주인은 우리 유림이다. 그런데 국유문화재라는 이유로 그간 사용에 제한을 받아왔다. 광복 후 성균관이 갖고 있다가 숭례문 화재 여파로 지난 7여년 문화재청에 넘어간 성균관 일원에 대한 관리권을 이제는 회수해 문묘 성역을 정성스럽게 보존하면서 유교 본연의 목적 사업에 활용토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전통 가옥은 그 수명이 오래갈 수 없다. 옛날처럼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의 등재와 서재 등에 기숙할 수 있도록 해 성균관에 걸 맞는 전통문화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문묘 일원에 대한 유림의 직접 관리가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둘째는 인성교육을 위한 교육공간을 곧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도덕이 상실되고 윤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다. 성균관은 이러한 시점에 있어서 시대를 정화하고 이끌어가는 견인차가 돼야 한다. 더구나 인성교육 강화와 도덕윤리 회복의 시대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 성균관이 인재를 양성하고 풍속을 가지런히 하는 중심으로서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선구적으로 수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어 관장은 ‘유교문화대학’을 만들어 인성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내고, 또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국민을 교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유교박물관 건립은 유림의 자부심”

특히 어 관장은 서울 성북동에 건립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유교박물관에 큰 애착을 보였다. 관장직을 맡기 전부터 건립추진위원장을 하고 있었던 그라 더욱 그렇다. 그는 당시 동료들의 협조와 자신의 사재를 털어 3만 9669㎡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 유교박물관에 인성교육장, 수련원, 명예의 전당 등 그야말로 유교의 대성지로 만들 비전을 갖고 있다. 그는 “유림들이 그간 희망을 잃고 살았는데, 유교박물관은 유림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라며 자신의 임기동안 건축허가만 받아도 대성공이라고 낙관했다.

최근덕 전 관장이 수억원의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로 인해 성균관이 3년간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못했으나, 올해부터 페널티가 풀려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점 역시 어 관장에게 희망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종단 안팎으로 화합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사자성어를 제시했다. 공자의 논어 자로 편에서 나온 말로,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를 잘 나타내주는 단어다.

어 관장은 “동이불화(同而不和), 곧 결국 뜻이 같아도 다투면 소인이지만, 뜻은 달라도 모든 걸 품고 수양하는 사람은 성인군자”라고 정의했다. 이어 “이 같은 공자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화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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