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편집인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사랑스럽고 귀하지 않겠는가마는 한국 사회에서의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그 밑바탕에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자식을 구속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래의 직업이나 배우자마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유를 억압당했다고 느끼는 자식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일탈도 마음대로 꿈꿀 수 없던 날들이 있었다.

최근 방영됐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상당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요즘 시대 잊고 지낸 부모와 자식 간의 정(情), 이웃 간의 정(情)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나눔의 정을 알았던 시절, 이웃이 힘들게 살지는 않는지, 도와줄 일은 없는지, 옆집 아이도 내 아이처럼 돌보며 혹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훈계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절.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의 일상이었던 이런 모습이 사라진 지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 불거진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은 아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안식처와 쉼터가 돼야 할 부모가 외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요,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드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으로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아직 7살이던 지난 2012년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과 방치로 숨진 이 초등생은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부검결과 숨졌을 당시 외력이 가해지면서 머리와 얼굴 등에 멍이나 상처로 인한 변색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애초 목욕탕에서 넘어져 의식을 잃은 뒤 깨어나 약 1개월가량 치료를 받지 않은 채 방치하다 숨졌다는 사실과는 다르다. 이 사건을 아동학대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가해자인 아버지 외에도 숨진 초등생의 어머니 또한 아동학대에 적극 가담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사 과정에서 숨진 초등생의 아버지는 자신도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맞고 자란 아이가 때리는 부모가 되는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변명을 위한 ‘변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폭력의 공포, 그것도 부모의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와 같은 폭력의 대물림 현상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외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자랐다면, 내 자식에게만은 그런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니 교육의 차원을 떠나 이치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에게 더욱이 자식이나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요지경이라지만,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고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게다가 자식의 시신을 훼손해 4년 가까이 방치해 온 사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자식이 죽으면 평생을 가슴에 묻으며 살아가는 부모이건만, 제 자식을 죽이고도 태연하게 4년이라는 시간을 생활하며 지냈다는 사실이 끔찍하면서도 친부모에 의해 자행되는 아동학대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사회가 참으로 걱정이다.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으로 경찰은 ‘제2의 최군’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교육부 등으로부터 신고된 장기결석 학생 8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수사 중이며,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진술한 부산의 초등학생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고, 나머지 7명의 학생 부모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75명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취학독려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없이 살아도 나눌 게 있었던 시절, 혹시 옆집에 무슨 문제가 없나 관심 갖고 돌아보던 시절, 늘 보이던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찾아보기라도 했던 그 시절. 물질은 풍족하지 않았어도 인간애는 풍족했던 시절. 그 시절의 따뜻한 인간애를 오늘날에 되살리기 위해 개인과 단체, 유관기관, 정부 등이 함께 공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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