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 교수 "박지원에게 목민관 측면 있어"

(서울=연합뉴스) 조선 후기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친필로 쓴 목민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단국대 소장 연민문고에서 박지원이 쓴 '칠사고(七事考)'를 발견했다"며 "문장가이자 농학가였던 박지원에게 목민관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음을 주목하게 하는 자료"라고 1일 말했다.

'칠사고'는 박지원이 충청도 면천군수로 있으면서 작성한 글을 모은 '면양잡록(沔陽雜錄)' 가운데 포함됐다. 작성된 시기는 군수로 재임한 1799년 5월부터 1800년 8월 사이다.

'칠사고'는 경국대전 규정에 나오는 '수령칠사(守令七事)', 즉 수령이 해야 할 7가지 업무에서 나온 제목으로 '수령이 해야 할 일을 고찰하는 서적'이라는 뜻이다.

'칠사고'는 박지원이 '목민고'와 '자치통감' 등 각종 서적을 읽으면서 필사한 목민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김 교수는 "'칠사고'는 여러 서적에서 자료를 뽑아 편집한 것으로, 완성된 저작으로 가는 중간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완전한 저작이 되려면 서문과 목차가 추가되고 본문의 체계화가 이뤄지고 박지원의 견해를 밝힌 '안(按)'이 추가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조선시대 저작이 자료를 사출(寫出)해 편집하는 데서 시작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박지원의 저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박지원이 '칠사고'를 편집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경험을 반영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은 책에서 지방 토호들이 관리와 결탁해 환곡을 받아먹고 도망자로 처리해 버리는 폐단을 언급하면서 안의현감 시절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또 '칠사고'에서 각종 장부를 철저히 정리할 것을 강조했는데 그의 농서인 '과농소초(課農小抄)'에는 연천군의 토지와 수확량 등을 굉장히 정확히 적어 관직 경험과 책 내용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칠사고'의 특징을 4가지로 정리했다.

▲사대부 출신의 수령을 위한 지침서라는 점 ▲각종 공문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재화의 이동은 업무상 관련자들이 공동으로 감독하게 했다는 점 ▲환곡과 군정의 운영을 향촌의 기본단위인 통리를 기준으로 삼은 점 ▲서양의 수차(水車) 제도를 도입하자고 한 점이 그것이다.

그는 "박지원은 문장가로 유명하고 북학사상이나 농학에도 관심을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관리로서의 측면은 부각이 안 됐다. 수령을 지낸 사람이 농서뿐만 아니라 목민서도 썼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칠사고'는 '면양잡록' 가운데 제6책 후반부와 제7책에 동일한 내용이 각각 실려 있다.

제6책 후반부에는 대부분 초서체로 돼 있는데 김문식 교수는 필체 등으로 미뤄 박지원의 친필일 것으로 추정했다. 박지원이 각종 서적을 읽으면서 목민과 관련된 내용을 초록해 빠른 속도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제7책은 해서체인데 제6책 후반부의 것과 동일한 내용인 것으로 보아 박지원이 작성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다시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칠사고'에 대한 상세한 연구 결과를 5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주최로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연민문고 소장 자료에 대한 연구성과를 알리는 자리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김명호 서울대 교수가 '열하일기' 필사본에 대해, 김영진 계명대 교수가 박지원의 산문집에 대해, 허경진 연세대 교수가 이가원 주석본 '구운몽'에 대해서도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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