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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물로 설정된 ‘CES’가 한국에게 보내는 편지

[천지일보=이솜 기자] 9일 세계최대가전박람회인 CES가 마무리됐다. 전자업계의 축제임에도 한국의 수심은 깊다. 중국발 광풍 때문이다. 과거 한국도, 일본도 중국처럼 열풍을 일으킨 때가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CES 입장에서 올해 전시회를 평가해본다.

“한국 독자님들 반갑습니다. CES입니다. 제 이름의 뜻이요? 그대로 풀이하자면 소비자 전자 쇼(Consumer Electric Show)입니다. 최근에는 가전을 넘어 ICT 총집합 전시회라 할 정도로 범위가 확대됐어요.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쉰 살이네요. 백세시대인데 아직 젊은 나이죠?

저는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요. 어떤 가전 쇼도 저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답니다. 저를 통해 공개되는 기기와 기술은 그 한 해의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매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저를 찾는 이유죠. 저를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1월 초에는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 티켓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올해도 한국 가전 업체들은 터줏대감처럼 전시장 중앙 제일 큰 자리를 차지했죠. 저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 기뻐하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쨌든 정말 축하드립니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지금 한국 업체가 있던 자리에는 일본이 있었어요. 소니, 샤프, 도시바, 히타치... 기억나죠? 추억의 이름들. 저는 그 분들이 영원히 안방마님 역할을 할 줄 알았어요.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 업체가 TV 시장의 선두주자였으니까요.

삼성·LG가 LCD TV로 일본의 기세를 꺾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반전의 순간이었죠. 5년전 인가요? 그때 한국 업체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꿰차면서 저는 예감했답니다. ‘한국이 전자 시장을 주름잡겠구나.’

그때 저는 한창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어요. 나는 분명 가전 전시회인데, 모바일 부문이 더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제 동생 중에 MWC라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통신 산업 전시회가 있는데도 꼭 저한테 와서 휴대폰과 태블릿PC 등을 선보이고 싶다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됐죠. 물론 지금은 그런 고민은 안합니다. 결국 제가 잘나가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지금 IT 업계에는 더 이상 ‘경계’라는 단어는 없어지고 있어요. 올해만 봐도 전통적인 가전을 내놓은 업체가 손에 꼽을 정도랍니다. 이젠 이름을 바꿔야하나 생각도 드네요.

다시 한국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올해 한국 업체들이 내놓은 기기와 기술들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3-4년 전에 IT전자업계의 비전으로 제시됐던 신기술들이 대부분 현실화됐더군요. 하지만 바꿔 말하면 ‘혁신’이다 싶을만한 새로운 제품은 없었습니다. 올해 핵심 키워드였던 IoT, OLED, 자율주행차, 드론, 3D 프린터, VR은 모두 최소 2년 전에 나온 예상 제품·기술들 아니었나요?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순 없지만, 제가 초조한 이유는 ‘중국’ 때문입니다. 올해만 봐도 CES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제품 중 하나인 세계 최초 유인 드론은 중국 스타트업 업체 ‘이항’이 공개했습니다. 또 TCL, 하이센스, 하이얼, 창홍, 콩카 등 중국 가전 업체들은 한국과 같이 HDR과 퀀텀닷 기술을 적용한 초고해상도 TV와 스마트홈을 화두로 들고 나왔네요. 한국이 최고다 자부하던 OLED TV도 주력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10년 전 일본과 한국이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일본은 최근 로봇과 TV로 다시 부활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곳곳의 전시장에서 ‘한국 위기설’이 돌더군요. 저는 한국이 과거 일본처럼 현실에 안주하다 쓸쓸히 안방을 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1월에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저를 빛내주길 바랍니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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