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대학로에서 화제가 된 ‘변태’라는 연극이 있다. 재작년 서울연극인대상에서 대상과 연기상, 극작상을 받으며 인정을 받은 작품으로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장기 공연을 했다. 제목을 보면 야릇한 내용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매주 진지하고 철학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변태(變態)’는 비정상적인 성적 태도나 취향이 아니라, ‘변해서 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연극 ‘변태’를 관람한 사람들은 스토리의 힘에 빠져들게 된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역시 정교하고 치밀하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각 인물들에게 부여된 성격과 역할이 분명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배우들의 역량도 놀랍다. 이 연극이 왜 상을 받고 높은 평가를 받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인이면서 책 대여점을 하는 남편과 시간제 글쓰기 교사로 일하는 아내가 마주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 ‘민효석’은 문학과 이상을 꿈꾸며 현실과 격리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가난한 시인이다. 하늘의 별을 헤며 문학을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포르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약하고 이율배반적인 지식인. 아내 ‘한소영’은 그런 남편을 모멸하고,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한다.

책 대여점에 어느 날 동네 정육점 주인 ‘오동탁’이 찾아온다. 고기를 써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네 다방 마담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시집을 내고 싶다며 시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민효석은 성심껏 시를 가르치고, 오동탁은 성심껏 돈을 건넨다. 그렇게 시를 배워가던 오동탁의 노트에 자작시가 가득 실리고, 민효석은 건성으로 권위 있는 문학 전문 출판사에 소개해 준다. 그런데 오동탁의 시가 그 출판사를 통해 시집으로 묶여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된다. 민효석과 한소영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고 분노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오동탁의 시를 쓰레기라고 여겼던 부부였다. 부부는 좌절하지만, 좌절의 방식은 다르다. 나약한 시인 남편은 집을 나가 방황하지만, 아내는 오동탁에게 몸을 내주고 비위를 맞추며 현실을 조롱한다. 조롱의 대상은 오동탁이 아니라 돈 앞에서 무력한 자신과 남편이다.

오동탁은 졸지에 정육점 주인에서 시인으로 거듭난다. 그야말로 ‘변태’다. 시인 오동탁은 문학회를 이끌며 시인으로 대접을 받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오동탁은 민효석의 책 대여점을 임대해 카페로 만들어 문학회 모임 공간으로 쓰고, 대여점의 헌책들은 제 값을 받고 사 준다. 한소영은 문학회의 무늬 회장으로 오동탁을 뒷바라지 한다. 오동탁은 기타를 튕기며 시를 읊고, 한소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를 낭송한다.

연극은, 자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지식인들과, 물질과 권력 같은 것들 때문에 뜻을 접고 자존심을 죽이고 꿈을 포기해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으로 들어가면 가정대로 그런 아픔이 있고, 사회와 나라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아파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을, 오동탁의 시집 ‘고기를 썰며’처럼, 날 것 그대로 ‘썰어서’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감한다.

정육점의 고깃덩어리들처럼, 우리들의 영혼도 그렇게 썰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해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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