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이 민감한 사안이라 절실하지만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한 데 비해, 박근혜 정부의 과감한 추진은 분명히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평가하는 데 굳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국민들 가슴 속엔 온도차는 있겠으나 왠지 석연찮은 면과 잔잔한 분노가 어우러지면서 잠재돼 있던 반일정서를 표출케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언론플레이를 염두에 둔 합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합의 후 후속보도, 일본 산케이 신문을 통해 ‘28일로서 모두 끝났다… 위안부 문제 더 사죄 안 한다’는 아베의 발언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의 표현”이라는 합의문 내용에 진정성이 없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었으며, “소녀상 철거가 10억엔 조건”이라는 교도통신의 기사는 한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격노케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실상 두 한일 정상이 결론 내린 ‘위안부 합의’라는 대타협은 시대적 필요성만을 놓고 본다면 이해할 만한 개연성이 없지는 않아 보이나, 한일 간에 얽힌 역사적·민족적 국민 정서와 감정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린 또 하나의 굴욕적 외교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한일관계,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역사를 경험해야 했던 한국과 강점했던 일본과의 역사와 영토 문제,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는 애초부터 일반적 외교논리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일본의 모호성 짙은 책임 인정과 사과를 이끌어 내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까지 약속해 줬다는 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의 국가적이고 법적 책임이 배제된 합의문에 국민들은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차치하고 금번 합의문의 가장 큰 맹점은 따로 있다. 금번 합의의 주체는 단연코 당사자인 피해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그러함에도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나 이해를 전혀 구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미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됐다. 또 기시다 외무상을 통한 사죄와 반성도 아니고 전화통화에 의한 사죄와 반성도 아닌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아베 내각총리의 육성에 의한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이었어야 했다. 나아가 합의문에 본질과 다른 소녀상 철거문제가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어떤 의미를 가졌든, 포함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위안부 내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역사 인식에 의구심을 갖게 하며, 역사적 본질을 망각한 채 치적 쌓기에 급급한 졸속합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하는 중요한 단서로 남게 됐다.
여기서 잠시 1905년 11월 17일 일본과 맺은 을사조약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을사조약을 ‘을사늑약’이라 부르고 있다. 조약은 서로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협상이라면, 늑약은 한쪽에서 강제로 이룬 협상을 뜻한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으로부터 강제로 외교권을 박탈당하면서 불평등하게 체결됐기에 이를 ‘을사늑약’이라 부르는 것이며, 따라서 당연히 111년 전의 이 불평등 조약은 ‘무효’라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한미일 공조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적 협력 즉, 현실적 시대적 요구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의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적 존엄성 회복이 무시되고 좌절돼야 한다면 이 또한 불평등 합의로 봐야 마땅하다. 더욱이 금번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관한 사안이었다면, 결과론적 모양새는 한일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간에 이뤄진 합의의 형식으로 비화됐고, 그런 측면에서 놓고 볼 때 이 합의는 피해 당사자가 완전 무시된 불평등 합의가 된다는 것이다.
정녕 일본은 동북아의 미래를 함께 건설해 나갈 동반자로 인식한다면 역사적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미래를 위해 함께 설계해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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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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