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새해 첫날의 해는 독도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밝힌 대로 독도의 새해 첫 해는 7시 26분 18초에 바다위로 힘차게 떠올랐고, 내륙에서의 첫 해돋이는 7시 31분 17초, 울산 방어진이었다. 대구가 7시 35분 40초, 광주 7시 40분 50초, 서울은 7시 46분 41초에 해가 떠올랐다.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는 같은 것이지만 년도가 바뀐 후 첫날의 해돋이는 새로운 의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은 고생하면서도 해돋이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해돋이라 하니 몇 년 전 일이 생각난다.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동해안 울진으로 간 적이 있는데, 그믐날 백암온천에서 1박 한 후 새해 첫날 새벽에 동해바다로 향했다. 후포 앞바다에 도착하니 6시 반경으로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추운 때라 우리 일행들은 백사장에서 벌벌 떨며 날이 새기를 기다렸고, 휑하니 뚫린 바닷가로 칼바람이 불어 닥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참고 견딘 보람이 있어 7시 반이 조금 넘자 해돋이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 바닷물 위에 얼비치는 찬란한 해의 장엄한 광경은 전에 몇 번 보았어도 장관이었고, 다시금 영조 때 의유당 김씨가 쓴 동명일기(東溟日記)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奇異)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작가는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고 기술했던 바, 일출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보는 이에겐 황홀경이다.

의유당 김씨가 귀경대(龜景臺) 해돋이를 보고나서 쓴 동명일기의 황홀경 유람은 9월에 이뤄진 터여서 가을이라 날씨가 좋을 때이지만 새해 첫날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고생한 만큼이나 생각을 더하게 만들었다. 바다위로 해가 돋기 전까지만 해도 이제나 저제나 해가 떠오를까 기대감이 컸지만 막상 해가 동해바다 위로 둥싯 떠오른 후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차안으로 파고드는 햇볕에 얼굴이 따가워 그 해 빛을 가리기도 했으니….

불과 반시간 전만 해도 오랫동안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해돋이를 기다려온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해돋이를 보고 난 후에 사정이 달라졌으니, 가만히 헤아려보면 사람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유리창을 통해 파고드는 아침햇살도 조금 전까지 그 해를 맞이하러 기다렸건만, 이루고자했던 했던 바가 이미 충족돼 더 이상 필요하지가 않으니 따갑게 파고드는 아침햇살을 멀리하려는 생각이니 필자의 심사가 간사하다는 것이다.

올해 해돋이 뉴스를 접하면서 그 같은 옛일이 생각나 자신이 몸소 겪어 알게 된 ‘인간 간사함’에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면서 ‘올해는 진중해야지’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 둔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 나는 점은 필요에 의해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인간의 간사함인데,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서, 회자(膾炙)되다 또 사라지는 숱한 사회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주목되는 바, 그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심 걱정해본다.

새해를 맞았으니 응당 소망이 있어야겠다. 필자는 명상하는 기분으로 ‘올해는 복 받아라. 뜻대로 살고지라!’ 이렇게 되었음 하고 소원을 담아본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 주변의 불우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이 더욱 커지게 하고, 지금까지 이념과 지역, 세대 갈등 등으로 매몰된 사회현상을 바로잡고, 불안요소들을 잠 재워 오직 나라가 태평스럽고 국민이 평안한 국태안민(國太安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6년에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무한재(無限材)라서 공기의 그 귀중함을 잊고 지내듯 이 땅에 꽃피워진 자유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되새기는 한 해가 되게 하고, 대한의 신(新) 시민들이 정의가 충만한 가운데 올해 총선에서는 지금까지 구태정치를 이어가고 폐해의 정치, 사회 갈등을 조작한 저급·사이비 정치인들이 신성한 정치의 장(場)에 발을 담구지 못하는 한 해, 국민생각에 진중한 정치인들이 협심해 새 정치를 만들어가는 한 해가 되는 것.

해돋이 구경 후 햇살을 귀찮아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거나 관심이 없다는 구실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사고력과 행동으로 살아가기, 그에 더하여 안정된 사회기틀 위에 경제가 회복돼 일자리 마련한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이웃들이 잘 사는 사회를 이루게 하고, 민주의식과 반듯함이 나라 전체를 에워싸는 그러한 한 해가 되는 것, 이것이 해돋이 여행은 못했어도 정초에 올리는 필자의 소망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