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요즘 경기가 어떤가요?” “떠들썩하던 연말 분위기가 없어진 것은 벌써 몇 년째이지요. 특히 올해는 더 조용한 편이네요.”

어느 모범택시 기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회사 퇴직을 고심중인 후배 하나가 신상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저녁 늦은 시간에 필자의 동네로 찾아오며 이용한 모범택시 기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후배는 날씨가 워낙 추워 급한 마음에 자신 앞으로 다가오는 차를 서둘러 잡고 보니 모범택시였다. 몇 년 만에 타본 모범택시는 과거 포니2를 몰며 택시 운전을 시작한 후 경력 30년째 베테랑 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 기사는 그리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빈손으로 귀가한 것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우울한 세밑이다.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이 폐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밝은 얼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청년들이 턱없이 높아진 취업 문턱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아이를 낳아놓긴 놓았는데 직장에 감원 바람이 불고 있어 걱정이 돼 출퇴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아직 더 일하고 싶지만 정년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너무 일찍 퇴사한 아버지들은 아침 출근 시간에 갈 곳이 없다. 젊은 부부들이 양육비며 교육비며 어깨를 짓누르는 준조세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면서 신생아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추락일로다. 가계부채 수준은 120조원에 육박한다. 이자조차 못 갚는 좀비기업도 넘쳐나고 있다. 시골엔 일손이 부족하고 도시엔 빈민과 실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일부 기득권층은 얘기가 다르겠지만) 마치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란 폐해는 다 가져다 놓은 것처럼 힘겹고 숨가쁜 한국의 도시 생활이 아닌가. 무언가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원래는 경제가 좋아진다고 해야 해외투자가 활성화된다. 한국 상품을 바라보는 수입국의 시선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잘 나간다고 떠벌리기라도 해야 호기심 어린 눈길이 머물 것이다. 그런데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위기’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우리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진단했다. 박 대통령은 16일 경제관계 장관들에게 우리 경제의 취약 요인을 철저히 점검하고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특히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빚을 처음부터 갚아나가는 관행을 확립하고 부채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공급과잉 업종을 사전에 구조조정 하지 않으면 업종 전체가 위기에 빠지고 그것은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신흥국 불안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위기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조치)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떤 지혜로 위기의 한국 경제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심히 혼란스럽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단계로 올렸다. 이는 21단계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사상최고였다. 신용등급만으로는 중국 일본 등 주변의 경제대국을 추월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으로부터 자본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한국 금융시장엔 희소식이다. 외국으로부터의 자금조달금리를 낮추고 국내 증시나 외환시장의 내구력을 키우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 한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때마다 금융시장이 얼마나 심하게 요동쳤는지를 기억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인 것도 사실이다.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도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잇따라 등급을 올리며 한국 경제를 장밋빛으로 전망했지만 그 후 한국 경제는 암울한 잿빛이었다. 신용등급이란 단지 부채상환능력을 살펴보는 것일 뿐이지 한 나라 전체에 대한 평가가 결코 아닌 것이다. 즉 재정은 건전해도 속으로 곪고 있는 게 한국 경제 상황인 듯.

국가예산이 효율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피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책정한 예산이 물 새듯 어디로 새지는 않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의 한국은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들여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무기를 많이 수입한 나라가 한국이다. 무기 구입 액수가 78억 달러(약 9조 13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한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고 있다. 무려 18조 4000억원이 들어가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KF-X) 추진과정만 해도 갑(甲)인 미국의 핵심기술을 이전받지 못하고 을(乙)이 돼 질질 끌려다닌 느낌이다. 일본과 달리. 좀 멀리 내다보고 방위산업 국산화와 현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이 언젠가 놀랄 만한 방산무기들을 미리미리 갖춰둬야 하지 않을까.

2016년 새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국내외 정치 경제 여건이 녹록치 않다. 필요한 것은 ‘혁명’이다. 창조적 이노베이션(Innovation)으로 새해의 삶과 행복이 다름 아닌 우리 것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