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12월 중순경 미국에 사는 아들집을 다녀온 후 무료전화로 연락해봐야지 생각하고 카톡(카카오톡)을 휴대전화기에 올렸다. 등록해놓고서 방법을 몰라 아직 사용하진 않았지만 그 사이에 지인들로부터 메시지 몇 건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고향친구가 ‘이제사 카톡이?’라 글 올리며 안부를 전해왔고, 또 바삐 사느라 그간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던 브레이크뉴스 문 대표도 최근 상황을 보내왔으니 사람들에게 일반화돼 실시간을 잇는 카톡의 위력을 새삼 느낄 만하다.

이번에는 교장 친구가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무슨 내용인지 한번 보았다. 동영상 속에는 멋진 그림을 배경으로 한 ‘새해 설렘’이란 제목의 글과 내용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돋궈주었다. 그 영상을 보노라니 진정한 삶의 가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이모저모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들이어서 필자가 느껴지는 게 많았다. 그 정도 동영상을 만들려면 상당한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친구가 직접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년퇴직 후에도 이것저것 많이 배우려 다녔으니 실제로 박 교장이 만들어 보낸 것이라 짐작해봤다.

그 시작하는 초기 화면에서는 요즘 시류(時流)를 언급하고 있는 바,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으니 ‘시끄럽지 않은 해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저물어가는 해가 설령 허름하다 할지라도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자는 지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내용을 헤아리며 잠시 생각해본다. 말대로 인생살이에 기쁘고 좋은 일만 있을까마는 혹, 슬프고 괴로운 일들을 스스로 키워나가야 할 마음의 카파시티(capacity)에 담아 자기 삶의 양식에 보탬이 되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자신의 존재성 확보가 우선이다.

어느덧 한 해의 세밑이 됐지만 필자는 각별히 조심하고 경계하면서 올 한해를 살아온 것 같다. 복이 있어 네 번이나 해외여행을 했지만 그것은 속박을 벗어나기 위한 잠시간의 여정인 것이다. 질곡의 시간 속에서 글 씀의 직업관에 옭매었으니 세밑까지 무탈해 정말 다행스럽다. 나름대로 생각해봐도 일 없을 것 같지만 명색이 언론인의 길을 걷다 보니 흘러가는 시공 속에 스치는 잡상(雜想) 하나라도 놓치려 하지 않으려 애쓴다. 신문사나 사회가 ‘언론’이라는 완장을 내게 채워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필자 마음을 속박하는 게 있다. 그것은 청춘 때 가졌던 직업의 책임감보다 더 큰 위압을 가하며 무거운 중량으로 매섭게 다가서는 사실의 헤아림이다.

어느 누구든 연말이 되면 1년 동안 행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에 이루었으면 하는 염원 같은 게 있다. 세상사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글 쓰고 있고, 또 계속 써야 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글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한결같은 바람이다. “길러도 길러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쓸 이야기꺼리가 생기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당히 지면을 메우고 공간을 채우는 글이 아닌, 울림과 반향(反響)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음인데,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더 치열하게 물들이고 싶다.

시류에 아부하는 글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필자가 소속된 신문사 사시(社是)가 그러하듯,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논조로 진실되고 객관적인 글을 쓰고 싶다. 국익에 도움을 주고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이 되는 참 글의 유용성을 모를 리 없건마는 내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천성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문학과 언론의 지향하는 바 목적과 성격이 다르니 그 또한 어려움이다. 그 생각을 하던 중 시작(詩作)에 몰입하면서 인생의 무게를 전 생애로 떠받치던 젊은 문학도의 한때와 그 당시 마음에 굳게 담아둔 철학을 떠올려본다.

‘… 개화 직전, 꽃의 숨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우주로 흘러가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시인입네 거드름을 피워도 부끄럽지 않는 세월이라면/ 이 땅의 시란 시는 다 분해되어, 각자/ 본래의 단어로 돌아가고/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시인들은/ 비로소 시인이란 이름을 자연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이하 생략)’. 이 시는 ‘컴퓨터로 시를 쓴다면’ 제목의 졸시(拙詩) 일부분인데, 그때의 질곡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문학이 아닌 사회의 등불로 일컫는 ‘언론’의 바른 가치와 진정한 몫을 전달하는 데 부끄러움을 아는 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싶음이다.

이제 사흘만 지나면 을미년도 긴 여운 걷고 잠적되겠지만 한 해가 끝나는 이 시기가 되면 회한이 커서 그런지 생각도 더 절실해진다. 그 마음 위에 새해를 맞는 설렘이 더하니 내게는 새로움을 향한 더 큰 긴장감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우연히 찾아든 기회, 그것은 전국종합일간지 천지일보사로부터의 논설위원 제의였고, 지난 3년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메꾼 시공간의 노력을 아는지 신문사에서는 내년부터 더 큰 책임을 내게 맡겼다. 저무는 세밑에 필자가 받아든 질곡 같은 선물은 다시금 새로움을 향한 설렘으로 독자들과 함께 새해의 행복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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