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대왕비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DB

대왕비, 문광면 테마공원 안에 실물 크기로 건립
中 동북공정 대응 ‘고구려 우리 역사지킴이’ 뜻도
민족의 동질성 회복, 한반도통일 향한 염원 담아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괴산군 문광면 테마공원 안에 옛 고구려 왕도 지안에 있는 광개토왕비가 실물크기로 세워진다. 한반도에서 높이 6.39m, 무게 37t의 실물 크기로 건립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왜 괴산에 광개토왕비인가? 괴산군은 ‘현재 만주에 있는 민족의 영웅 광개토대왕비를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제대로 볼 수 없어 고구려의 역사와 기상이 넘치는 괴산에 비를 건립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로 포함시키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응, 고구려 역사를 지키려는 숨은 뜻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기록을 보면 괴산은 옛 고구려 땅 잉근내(仍斤乃). 어문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잉근내’라는 말은 고구려식 표기로 내(河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풀이 한다. 잉근내는 속리산에서 발원, 청천을 지나 음성 충주시를 흐르는 달천이 된다는 것이다. 고(古) 기록을 보면 충북 음성 지명도 고구려 ‘잉근내’라고 한 것을 보면 청천-달천을 이같이 불렀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 광개토대왕비문 탁본 ⓒ천지일보(뉴스천지)DB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지역이 5세기 초반 광개토대왕에 의해 복속됐다가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정복하기까지 140년간 고구려령이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5세기 후반 고구려는 신라와 괴산 청천지역인 살수원(薩水原)에서 충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라가 고구려와 살수원에서 싸워 패해 견아성(지금의 상주)으로 물러섰으며 백제에 지원군을 요청, 동성왕이 정병 3000명을 보내자 고구려가 포위를 풀었다’는 기록이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침공에 대비해 백제와 동맹을 맺어 상호 지원하는 동맹관계였던 것이다. 이 전쟁이후 신라는 계립령을 넘지 못했으며 청천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구려가 북방민족의 침입을 방어하느라 남방지역을 소홀히 하자 진흥왕은 소백산 고구려경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죽령과 계립령 괴산 청천을 공격해 고구려 땅을 복속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괴산 연풍 칠성 문광 청천 도안 음성일대가 신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드디어 국원(國原)땅인 충주가 신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새로 점령한 신 개척지를 순회한 진흥왕은 여기서 가야 악사 우륵을 만난다.
7세기 초반 고구려 평원왕 시기 온달장군은 평양에서 출전하면서 비장한 말을 내뱉는다.

‘내가 계립령이서(鷄立嶺以西)의 땅을 찾지 못하면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

계립령은 지금의 충주시 조령(鳥嶺)인근의 고개로 옛 부터 신라의 북방 공략 루트였다. 장군 온달이 결사의지로 찾고 싶어 했던 땅이 계립령 서쪽이라면 바로 괴산군 일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온달은 왜 ‘계립령 서쪽에 대한 실지회복’을 결사의지로 표현한 것인가. 바로 고구려 선조들의 뼈가 묻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달은 이미 강성해진 신라군을 몰아내지 못하고 아차성(阿且城혹은 阿旦城)에서 전사한다.

아차성은 한강 설과 단양설이 존재하며 최근 역사학계는 단양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단양 영춘면에는 속칭 온달성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온달에 관한 설화가 많이 채집되고 있다. 온달이 전사하자 관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평강공주를 불러 관을 움직이게 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당시 평양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며 시각을 다투는 전시에서 온달의 죽음을 알릴 방도도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평강공주도 부군과 함께 동반 출전한 것으로 상정된다. 북방민족은 전쟁 때 여성들도 남장하여 출전시켰으며 장군들은 부인을 동반했다는 기록이 전하기 때문이다.
 

▲ 괴산 청천 도원리 절터에서 발견된 고구려식 와당 (사진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뉴스천지)
괴산군 연풍·칠성·청천·문광·감물 등지에는 고대 산성이 많다. 이들 산성의 연원을 밝히는 학술조사작업이 필요하며 청천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유적조사도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에는 옛 절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삼국시대 고식의 고구려식 와당이 출토된 적이 있다.

충북도문화재 위원을 역임한 이재준 역사연구가는 “도원리 사지는 경작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지만 학술조사가 이뤄져야 할 곳”이라며 “고구려 절터로 확인되면 고구려 최남단의 불교유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각수 괴산군수는 “괴산 지역은 전국제일의 명승고적인 화양동과 조선 성리학 최고봉 거유 송시열선생 묘소등 유서 깊은 역사유적이 많다”며 “괴산 고구려 유적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텔링을 완성해 힐링의 대명사격인 산막이 옛길을 연계한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광개토대왕비가 건립되면 중국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과 고구려사를 사랑하는 전국의 동호인들이 괴산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괴산 문광면 테마공원의 광개토대왕비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향한 염원도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자문=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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