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달력을 보니 달랑 한 장이 남았다. 올해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허전한 느낌마저 드는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으니 더욱 서운한 감이 든다. 필자가 자주 외출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지난 주말 서울역에 나가 지하철을 타면서 살펴봐도 자선냄비를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불경기 여파로 구세군의 자원봉사자들이 흔드는 종소리에 힘이 없어 보인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비단 구세군 냄비뿐만 아니라 종교·사회단체나 개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소중하고 가치가 크다. 기부가 일상화된 미국 같은 나라에서 부호들과 시민들이 기부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부는 종교단체나 사회기부단체를 통해 어쩌다 가끔씩 들어볼 수 있는 내용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처럼 정부가 불우계층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은 국가예산으로 하고 있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어려운 이웃에게 다 미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자선냄비나 적십자 회비 모금 등은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활동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라가 잘 살고 사회가 풍요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판단하는 잣대로 여러 가지 척도가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 주변에서 생활의 기초수요(基礎需要)에 못 미치는 불우이웃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렇게 볼 때 불우이웃이나 국제사회에서 기아(飢餓) 난민을 위한 사회단체나 개인의 노력들은 고귀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뉴스를 보니 교황청이 ‘빈자의 성녀’ 테레사(1910~1997년) 수녀에게 내년 9월 4일 시성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가톨릭에서는 두 개 이상의 기적을 시성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테레사 수녀 타계 1주년 특별 기도회에 참석했던 30대 인도 여성 암환자의 종양이 모두 사라진 것을 테레사 수녀의 기적으로 정식 인정해 성인의 전(前) 단계인 복자(福者) 반열에 올렸고, 이번에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이 치유된 것을 테레사의 기적으로 인정하면서 성인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평생을 불우한 자를 위해 일해 온 성자(聖者)의 살아생전 위업은 사후에도 후세사람들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고 추앙받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서 필자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지 못해 서운해 하면서 그 대신 불우이웃들을 돕는 사람들의 고귀함을 생각했었는 바, 지난 18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평생 동안 헌신하고 실천하는 한 분을 보았다. 천지일보가 주관한 ‘2015 천지인상’ 시상식에 들렀다가 만난 천지종교인상 수상자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이다. 종교와 정치, 국경을 초월해 세계 55개국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빈곤과 질병 퇴치에 앞장서왔고, 사랑·봉사의 산 증인으로서 커다란 위업을 남겼기에 올해의 천지인상을 수상하게 된 분이다.

필자는 언론에서 보도된 박 이사장의 종교적 활동이나 선행 등에 관해 한두 번 정도 본 적은 있으나 근거리에서 직접 본 바는 없다. 하지만 여든 살로 보기에는 정정하면서 모습에서 드러나는 표정은 앳되다. 수줍어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밝혔는 바, 세계 55개국의 불우계층을 돕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도약한 면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취지였고, 또 그가 지금까지 모금 등을 통해 150억원의 기부금품을 마련해 해외의 불우계층을 위해 지원했지만 정작으로 자신은 원불교에서 지급하는 월 23만여원을 받고 9년을 살았어도 남들이 곤궁해 보이지 않고,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는 소감을 말했는데,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공식행사를 마친 후 수상자들과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이상면 천지일보 사장 등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박청수 교무의 소녀 같은 순수성은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김 이사장이 “(박 교무의) 얼굴을 보니 80이 아니라 60을 빼고서 스무 살 꽃띠, 아니 이팔청춘이라 해도 되겠다”고 농담하자 박 이사장은 부끄러운 듯 “여든이 되면 사회활동을 못할 거로 알았다”며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앳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오랜 종교생활의 신앙과 불우계층을 위한 봉사정신과 믿음이 몸에 배여서가 아닌가 하고 필자는 생각했다.

자식이 원불교 교무되기를 원한 어머니의 바람대로 박 이사장은 정녀(貞女)가 되어 봉직한 오랜 세월의 종교생활에서 오직 이웃과 불우한 계층을 위해 노력한 대가로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호까지 얻었고, 또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계 곳곳의 어려운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일이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아 2010년도 노벨평화상 후보 최종 10인에 오르기도 했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오면서 인류사회에 헌신·봉공하기 위해 쉼 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 분명 그는 우리 사회와 지구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꾼이었다. 오찬을 끝내고서 헤어지는 길목에서도 뒤돌아보며 보내주는 밝은 미소는 향기가 되기에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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