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의 존립은 헌법을 잘 지키는 데서 비롯되고, 그 근간은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다. 대한민국헌법 규정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하며(제66조),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제101조 제1항)고 명기돼있다. 이는 중고생 수준이면 교과서에서 배워 알 수 있는 삼권분립의 내용인데, 헌법의 가장 기본인 삼권분립이 흔들린다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고 국가근본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그러한 헌법적 맥락에서 본다면 지난 18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발언한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입법권을 보호할 권리를 가진 의장의 입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현안 법안에 대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구를 밀어붙이려 하는 데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그 발단은 최근에 청와대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핵심 법안 직권상정을 결단하라고 요구했고, 이어서 박 대통령도 경제, 노동 법안의 처리를 재차 촉구하고 나서서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정부가 통과되기를 바라는 쟁점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돼있어 이로 인해 경제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박 대통령의 걱정이 큼은 헤아릴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 권한이기 때문에 헌법과 국회법에 합당하게 처리돼야 함에도 청와대, 여당이 충족되지도 않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이 일은 의회민주주의를 보호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회의장에게 책임을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

의회민주주의는 적법한 내용과 절차에 따라 합당해야 되며, 의원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 국회법 85조에 의하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때’ 등 3가지에 한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할 수가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경제위기 국가 비상사태’를 주장하며 법안 직권 상정을 요구해 온 것에 대해 “경제 상황을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할 수가 없다”는 정 의장의 답은 법에 근거해 명확히 맞는 말이다. 그 소신은 입법권의의 수장으로서 삼권분립 정신과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헌법을 지켜내기 위한 막중한 책무인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