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안·박·천·손 등 제마다의 길로 흩어졌으니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군웅할거(群雄割據, 여러 영웅이 각 지역을 차지하고 서로 세력을 다툼)’를 연상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총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식상한 현상이며 이합집산 내지 합종연횡이라는 범야권연대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야당의 분열은 여당의 호재가 아닌 악재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재해선 안 되는 이유인 것이다. 어쨌든 잠깐의 흥행몰이에 그쳤다고는 하지만 안 전 대표 입장에서는 국민들로부터 잊혀져가는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재인식시키는 계기로 삼기에는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친노와 친박의 고질적이며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굴레에서 고민하던 중도정치세력을 규합하기에 유리한 환경까지 자연스럽게 얻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의도된 정치수순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중도를 표방하는 안 전 대표라 할지라도 그동안 국민들에게 심어준 불신의 고리는 분명 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말·말·말이다. 국민들의 여망에 의해 시작된 그의 정치인생이 시작과 함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새 정치’를 표방했다면, 구태 정치에 이골이 난 국민들에게 새 정치의 이념과 철학 나아가 정책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새 정치와 혁신은 아직도 국민들에게는 모호하며 의구심만 낳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찌 됐든 안 전 대표의 탈당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 데는 분명해 보인다. 안 전 대표의 멘토 역할을 해오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에서도 “낡은 진보뿐 아니라 낡은 보수 타파에 나서야 한다”며 “안철수 신당은 새누리당에서도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새누리당으로서 야당의 분열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가 되며, “안 의원 탈당으로 ‘야당 분열’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며 “새누리당의 분열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약속한다”는 김무성 대표의 호언장담이 왜 그런지 석연찮게 들리게 한다.
이러한 때, 떠오르는 인물은 지난달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오직 일평생 민주주의와 의회를 위해 몸바친 거목이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세력을 하나로 규합해 오늘날 민주사회와 민주국가를 이룩한 거산이라는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정치도 그를 통해 시작한 수많은 문하생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낳은 부산물이 있으니 바로 ‘계보정치’다. 오늘날 이 나라를 좀먹는 사분오열된 현실정치는 두 전직 대통령이 뿌린 씨의 결실이며 유산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을 때는 어김없이 이면에는 치열한 당쟁이 있었고 계파 싸움이 있었다. 이 시대 정치인들이 나라의 운명보다 당과 계보를 더 중시 여겼던 지난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산적한 민생과 법안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계보와 계파의 이해득실에만 여념이 없다면, 이 나라와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리 ‘새 정치’를 들고 나와도 국민을 외면한 정치는 이미 새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봐야 한다. 정치는 국민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성립하는 것이다. 권력과 권력 다툼에만 눈이 멀어버린 정치인과 그 세력은 혼란한 가운데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의연하게 정치력을 발휘하는 정치 선진국들의 성숙한 정치력을 본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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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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