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자씨가 직접 요리한 ‘닭고기 온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음식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당시 접대한 요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북한 고급요리 전문가 안영자씨 인터뷰]

北서 20여년간 요리사로 일해… 레시피 정리한 책 출간 준비중
“식재료 맛 살리고 궁합 맞아야”
된장·고추장도 직접 담가 사용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문어숙회, 남새합성, 닭고기랭묵, 고급마요네즈무침, 떡합성, 배추통김치, 오이숙장조림, 식빵. 이 중 개인적으로 먹어본 음식은 문어숙회와 김치, 식빵 정도다. 나머지는 재료는 짐작이 가는데, 만드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스파게티나 햄버거처럼 해외 음식은 아니다. 이름을 보면 말이다. 8가지 중 겨우 2~3가지만 아는 이 낯선 이름의 음식들은 바로 지난 10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 만찬에 등장한 음식들이다. 만찬 테이블에 차려진 그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올해가 분단 70주년이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났다.

실제 북한 음식 하면 냉면이나 순대 정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맛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담백하고, 한국 음식보다 덜 맵다는 정도다. 특정 지역이나 전문식당에 가지 않는 한 주변에서 먹어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북한 음식을 한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한 달여 전 문을 연 식당이 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장수각’이다. ‘몸에 좋은 요리를 먹고 장수하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북한 고급요리 전문가로 알려진 안영자씨를 만났다. 고급요리 전문가란 안씨가 북한 인민부 초대소 내 주방에서 김일성과 북한 고위층 간부, 외국 귀빈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던 요리사로 20여년간 일했기에 붙여진 수식어다.

10여년 전 한국에 온 안씨는 자신의 경력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18살 때부터 시작해 20년간 매달려온 요리에 지쳐 다시는 요리를 쳐다보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음식을 만들게 됐고, 그의 솜씨가 남다르다는 것이 주변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앞치마를 두르게 된 안씨. 지난해 겨울부터 몇 달간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서 북한 요리를 강의했고, 이후 올리브TV ‘한식대첩 2’에 북한팀 대표로 출연하면서 대중의 관심까지 받게 됐다.

▲ 닭고기 온반 ⓒ천지일보(뉴스천지)
장수각을 운영하면서 안씨의 매니저 역할도 맡고 있는 안세인씨는 북한 음식이 궁금하다면 우선 맛부터 보라고 했다. 점심을 먹은 지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조금 망설여졌지만, 음식부터 권하는 건 그만큼 자부심이 남다른 게 아닐까 싶어 일단 먹어보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매니저의 추천을 받아 ‘닭고기 온반’을 주문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당시 접대한 요리로 밥, 국, 반찬이 한 그릇에 다 들어 있어 온반이라 이름 붙여졌다. 따뜻한 닭 뼈 육수를 부은 밥 위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와 쫄깃한 식감의 표고버섯이 가득했다. 붉은 실고추와 부추, 달걀 지단까지 곁들여 더욱 먹음직스러웠다. 국물은 담백하고 구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메주를 띄워 직접 담갔던 간장 맛이 났다. 반찬으로는 나온 물김치와 깍두기도 안씨가 직접 담갔다고 했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먹다 보니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웠다. 먹자마자 안씨가 질문을 던졌다. “속이 편하죠?” 순간 무슨 의미인지 몰라 “네?” 하고 되묻자, 그는 “속이 더부룩하지 않죠?”라며 다시 물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눈빛에서 읽혀졌다. 매니저의 설명을 더해 보니 그만큼 ‘소화가 잘되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안씨는 ‘요리사는 반(半) 의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약재를 포함한 모든 식재료의 성분과 효능은 물론, 재료 간 궁합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에서는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면 의사가 함께 있어 음식의 효능 등을 살핀다고 한다. 그 또한 북한 요리 전문 특설학교에서 2년간 강도 높은 요리사 양성과정을 마쳤다. 1년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갖가지 채소의 특성과 함께 다양한 조리법, 재료 간 궁합, 불 조절에 따른 재료의 향과 색, 맛의 변화 등 전반적인 요리 이론을 배웠고, 1년은 요리실습을 했다.

궁합이 안 맞는 재료로 만든 음식은 안 먹는 것보다 못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예로 김치를 대량 생산하는 어느 식품회사에서 그에게 자문을 요청해 갔더니 김치에 당근을 넣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당근은 비타민 C를 파괴하기 때문이란다. 또 한 번은 미역국에 마늘을 넣는 것을 봤는데, 마늘은 미역의 광물질 성분을 더욱 강화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광물질을 과다 섭취할 수 있어 함께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재료의 좋은 맛과 향, 식감 등을 잘 살리는 것이 좋은 요리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부재료나 양념, 그 용량도 주재료의 맛을 살리는 쪽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닭고기로 음식을 할 때 보통 누린내를 잡기 위해 생강·마늘·후추 등을 넣는데, 이렇게 하면 닭고기 특유의 담백한 맛과 단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며 “닭을 삶을 땐 복숭아씨·살구씨·측백씨 등을 활용하면 이 재료들은 향과 맛이 거의 없어, 닭고기 고유의 맛은 살리면서도 누린내와 잡내는 잡아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미료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요리사로 일할 당시에도 조미료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근 것만 사용한다. 안씨가 직접 만든 된장, 고추장을 손으로 찍어 먹어봤다. 된장은 짭짜름하면서도 메주 맛이 느껴졌고, 고추장은 칼칼하면서도 감칠맛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그는 한국에 와서 처음 3~4년은 음식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한국 음식이 투박한 북한 음식에 비해 예뻐 보이긴 하지만, 강한 조미료 맛에 다양한 음식을 먹어도 맛은 비슷비슷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단 조미료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주는 조리법으로 요리했다면 맛이 그렇게 비슷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자신의 입맛을 지키기 위해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리한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 음식이 어떤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울러 그의 다양한 조리법을 전수받을 사람들을 찾고 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책도 쓰고, 가르치기도 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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