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하고서 조계사로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한지 24일 만인 10일 오전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자칫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경찰과 신도들, 민주노총 조합원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됐지만 다행히도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경위야 어찌 됐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법을 찾은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조계사 측에 큰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동안 다수의 언론은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에 대해 거의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폭력 시위를 이유로 마치 그들을 ‘폭력배’처럼 매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왜 한상균 위원장을 보호하느냐며 조계사 스님들을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조계사 측은 차분했고 따뜻했다. 공권력을 피해 숨어 든 ‘중생’을 내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쫓기는 자가 누구든 그 손에 물 한 바가지 줄 수 없다면 우리는 종교를 말할 자격도 없다. 한상균 위원장이 절박한 심정으로 조계사에 피신한 것도 그런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한상균 위원장을 보호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은 한 위원장이다. 그동안 조계사 측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계사 측의 노력도 빛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의 대응도 좋았다. 조계사를 포위하고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경찰은 조계사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경찰이 힘이 약해서, 법적 근거가 불충분해서 공권력 투입을 미룬 것이 아니다. 조계사라는 종교적 공간의 위엄을 존중한 것이다. 조계사 관계자들의 중재 노력을 신뢰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큰 폭력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 본연의 자세를 지킨 것이다. 그 결과 한상균 위원장이 제 발로 걸어 나올 수 있었으며, 평화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대화와 협력, 그리고 소통은 그 어떤 폭력보다 고귀하다. 설사 지루하고 소모적인 대화가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보다 훨씬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점을 이번 한상균 위원장 사건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조계사에서 있었던 일련의 모습은 엄동설한에 활짝 피어난 연꽃을 보는 듯했다. 모두가 승자였다. 조계사 측도,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그리고 경찰도 승자였다. 그래서일까. 앞으로는 더 이상 폭력시위가 없도록 사회적 고민과 해법이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모두가 승자가 된 그 순간에 한상균 위원장은 생방송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들의 목소리를 더 진지하게 경청할 수 있었다. 폭력이 발생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