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종 38년(1543) 왕명에 의해 중국의 ‘고열녀전’을 한글로 번역해 간행한 고열녀전 언해본.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중종 38년 중국 ‘고열녀전’ 한글로 간행
역사·어학·문학 등 연구자료로 가치 높아


[천지일보=이경숙 기자] 중종 38년(1543) 왕명에 의해 중국의 ‘고열녀전’을 한글로 번역해 간행한 고열녀전 언해본 전문이 국립한글박물관에 의해 최초 공개됐다.

‘열녀전’이라고 하면 흔히 정절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여성들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고열녀전(古列女傳)’의 열녀는 ‘열녀(烈女)’가 아닌 여러 여성들을 뜻하는 ‘열녀(列女)’이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는 유교적 관념이 보편질서로 자리 잡다 보니 ‘열녀(列女)’가 아닌 ‘열녀(烈女)’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것이 널리 퍼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고열녀전은 동아시아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초기의 저작이다. 중국 한나라 때 유향(劉向, 기원전 77∼6년)이 편찬한 책으로, 모범이 될 만한 부인들과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망하게 한 여성들을 선별해 엮은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에게 희생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문화는 아니었다. 결혼 이후에도 친정 부모의 집에 살면서 자녀를 키울 수 있었고,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다. 또한 남편과 이별 후 개가(改嫁)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열녀전 언해본은 바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간행됐다.

이 책은 지금까지 중종 때 간행됐다는 기록만 전해지고 그 실물이 발견되지 않아 유실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작년 국립한글박물관이 책을 소장하게 되면서 이번에 전문이 공개된 것이다. 비록 전체 8권 중 권4 ‘정순전(貞順傳)’ 한 권뿐이지만, 기록만 전해지던 책의 실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책은 역사·어학·문학·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될 수 있는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열녀전 언해본은 1책(권4)의 목판본이며 총 44장이다. 이 책에는 그림·한문·언해문의 순서로 구성된 15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장 실력이 뛰어난 문인 신정(申珽)과 유항(柳沆)이 번역하고, 당대 명필이었던 유이손(柳耳孫)이 글을 썼다. 조선 전기 인물화로 명성을 떨쳤던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미려한 판화 13점도 포함돼 있다.

기록된 것을 번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남신녀는 신(申)나라 사람의 딸이다. 이미 풍(酆)나라 사람에게 시집가기로 약속돼 있었는데, 신랑 집에서 예를 갖추지 않고 (신부를) 맞이해 가려고 하니 딸이 중매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니 올바르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傳, 책 이름)’에 이르기를 ‘그 근본을 올바르게 하면 일이 다 잘되고 터럭 끝만큼이라도 그릇되게 하면 천 리만큼이나 그릇된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근본이 있으면 도가 생기고, 물이 샘솟는 곳을 깨끗이 하면 흐르는 물이 맑아집니다. 그러므로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혼인)은 중요한 것을 전하며 조상이 하던 일을 받들어 가통을 잇고, 종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의 집에서 예를 경솔히 하며 법을 그릇되게 하므로 시집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고 시집가지 않았다. 그러자 신랑의 집에서 신부를 관가에 송사해 옥에 가게 하였다. 딸은(그녀는) 끝까지 한 가지 일이 갖추어지지 않고 한 가지 예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절하고 대의를 지키고 죽어도 시집가지 않았다.

한편 국립한글박물관은 총서 발간과 관련 ‘조선 전기 고열녀전 언해본의 한글문화사적 해석’이라는 주제로 서지학·미술사·국어사·문학사·보존 처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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