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경비원과 입주민의 ‘상생 프로젝트 동행(同幸)’이 훈훈한 화제다. 동행(同幸)은 함께 행복하자는 뜻이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 지역 아파트 주민들이 전기료를 아껴 경비원의 월급을 올려주고 경비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경비원에게 스쿠터를 장만해 주자, 경비원은 이에 보답하고자 주민들에게 칼을 갈아주기 시작해 동네방네 소문이 났다.

또 난방공사 등 외부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갑’ ‘을’이라는 표현대신 ‘동’ ‘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계약 주체를 갑과 을이라 하지 않고 동등한 의미의 ‘동’과 ‘행’으로 한 것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갑질’의 싹을 없애 버리고 눈높이를 낮춘 것이다. 성북구에서도 참 좋은 아이디어라며 구청 행정에 도입했고, 구청에서 외주업체 등과 계약할 때도 ‘동’ ‘행’ 계약서를 쓰고 있다. 서명란도 서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아래위 배열이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두었다. 국가에서도 잘 한 일이라며 상을 주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주민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는 터라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얼마 전에도 부산의 어느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경비원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도록 한 것이 알려져 공분을 사기도 했다. 머리 희끗한 경비원이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모든 인간관계를 상하 서열로 따지려는 못된 습성이 문제다. 전북의 어느 도시에선 시장이 공식석상에서 이놈 저놈 하는 등 공무원을 머슴 취급한다며 공무원 노조에서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그 사람 인격은 보나마나다. 이런 시장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수두룩하다. 윗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래 사람의 인격을 짓이기는 몰지각한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 김영삼 대통령 영결식에서 단복 차림으로 추위에 떤 합창단 여학생들도 권위주의 서열문화의 한 단면이다. 공무원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의전이다. 모든 행사의 최종 귀결점은 윗사람을 얼마나 잘 모시는가이다. 윗사람 의전에 문제가 없으면 훌륭하게 행사를 치른 것이고, 제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의전이 틀어지면 실패한 것이 된다. 의전의 서열을 매기고 그에 따라 인력과 접대의 수준을 달리한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보면 합창단 아이들은 의전 대상은커녕 보살펴 줄 가치도 없는 존재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코미디 프로에서 임금이 제 입으로 “상감마마 납시오” 하면서 등장하는 모습이 있었다. 시(市)에서 마련한 행사에,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시장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시장이 폼을 잡고 걸어 들어온다. 그 뒤로는 펭귄 떼들처럼 부하들이 따른다. 시장이 손님을 모셔 놓고서는 제가 손님 행세를 하는 것이다. 제 입으로 “상감마마 납시오” 하는 코미디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국민들에게 봉사하라고 뽑아주었더니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 들고, 국민들 위해 몸을 바치겠다며 머리를 숙이던 그들이 국민들에게 호통을 치는 못된 버르장머리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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