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대한불교청년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원들이 경찰 진입을 반대하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상균 피신 조계사, 도마 위
비판론자 “사법질서 무너져”
“민주노총 농성 본부” 비난도
화쟁위원회 중재 나섰지만
일부 신도 “나가 달라” 요구

“약자 보듬는건 조계사 전통”
“종교 특수성 인정” 목소리도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서울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인 조계사가 한상균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의 피신으로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종교시설이 수배자의 도피처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명시된 규정은 없지만, 경찰이 사회적 통념과 관행에 따라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 온 종교시설이 오히려 범법자의 도피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1일 일부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종교시설 도피처’를 옹호하고 있다. 국가권력과 사회 약자 사이의 완충 역할을 위해선 종교적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이에 대해 “사법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종교시설은 치외법권 지대가 아닌 만큼 공권력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위원장이 피신한 조계사의 경우 문제가 간단치 않다. 단순 피신 장소뿐 아니라 민주노총 간부들이 수시로 왕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농성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타 종교에서도 이를 빌미로 비난의 목소리를 내면서 종교 갈등으로까지 불거지는 양상이다.

특히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론이 확산하고 있다. 아이디 ‘says ****’를 쓰는 네티즌은 “불교 조계사가 다른 종교까지 물 먹이고 있다는 게 분통하다”면서 “범죄자를 숨겨주는 집단으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종교일수록 사회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범법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계사 입구에서 만난 한 보수단체 회원은 색깔론을 펴기도 했다. 한 위원장을 이른바 ‘좌파’로 지목한 것이다. 조계사가 한 위원장의 피신을 받아준 것은 좌파를 옹호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그는 ‘승려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팻말을 몸에 붙인 채 1인 시위를 계속했다.

이 같은 비판론이 고조되면서 조계사도 내홍을 겪고 있다. 화쟁위원회가 경찰과 민주노총 사이에서 중재를 나선 가운데 조계사 소속 일부 신도들은 지난달 30일 한 위원장을 퇴거시키기 위해 실력행사까지 했다. 조계사 신도회 일부 신도들이 한 위원장이 보름째 피신한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몰려가 그를 끌어내려 한 것이다. 신도회 회원들이 조계사에 피신한 이의 퇴거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달리 옹호론을 펴는 이도 있었다. 이날 조계사 경내에서 만난 한 직원은 “조계사에서 스님들이 약자를 보듬는 것은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종교시설은 과거에도 도피처로 활용돼 왔다. 명동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1970년대부터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수많은 재야인사와 노동계 인사들이 탄압을 피해 명동성당에 몸을 숨겼다. 이 때문에 ‘민주화의 성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단체의 장기 농성이 반복되면서 신도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급기야 성당 측이 “노조 투쟁본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노조들의 퇴거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도피처로서의 의미는 퇴색했다.

2000년대 이후엔 조계사가 시국사범의 은신처 역할을 해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시위 당시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민주노총 간부가 조계사에 숨었다가 경찰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갔다. 2013년엔 철도파업 주도 혐의로 수배됐던 박태만 당시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조계사에 피신하기도 했다.

조계사 역시 일부 신도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조계사를 다녔다는 박모(80)씨는 “종교(불교)는 성불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수행에 정진해야지 정치에 관여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국가가 있어야 종교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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