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날씨 얘기를 하자면 넓고 넓은 천지가 일제히 맑거나 또는 일제히 비가 오거나 그 어느 한쪽의 동일한 기상 상태에 놓이는 일은 없다. 서울은 맑지만 지구 반대편 파리는 험상궂은 날씨에 사람들이 불쾌해 할 수도 있다. 일본의 태평양 연안이 해저 지진에 쓰나미가 덮쳐 아수라장이 될지언정 가까운 한국의 동해와 서해는 날씨가 좋고 평화롭기만 할 수도 있다. 뜨거운 모래 폭풍이 중동 지역 사막을 휩쓸 때라도 남극과 북극은 눈과 얼음이 뒤덮인 동토(凍土) 지대로 남는다. 태양이 어느 위도(緯度)에 있느냐에 따라서는 지구 남반부와 북반부의 계절이 뒤바뀐다. 지구 북반부의 한반도가 눈발 날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 남반부의 비슷한 위도 지역은 불볕 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 둥근 지구 전체를 조감한다면 지구 표면은 이렇게 쉼 없이 기후의 양태(樣態)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날씨 모자이크’로 덧씌워진다고 볼 수 있다.

어디 날씨뿐이랴. 전쟁과 평화도 그 같은 날씨의 양태와 일맥상통한다. 지역에 따라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며 ‘전쟁과 평화의 모자이크’가 지구를 덮고 있다. 평화를 구가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지역은 내분과 반란으로 조용할 날이 없고 어떤 지역은 종교에 기반을 둔 테러리스트들의 준동으로 상상조차 미치기 어려운 참극(慘劇)이 연출된다. 현실로서 그 지역들은 중동과 아프리카에 집중돼있다. 주민들은 유랑민이나 난민이 돼 탈출 엑소더스(exodus)에 다투어 나선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나라는 소수민족의 저항으로 어떤 나라들은 정글이나 산악의 게릴라들 때문에 평화가 위태롭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중동과 아프리카의 과격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한 평화의 파괴와 혼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자폭을 불사하는 지하디스트(Jihadist)들, 바로 이슬람 과격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들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적인 세력이 바로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를 민항기로 들이받아 무너뜨린 알카에다와 지금 시리아와 이라크의 권력 공백지대에 국가의 틀을 세우려 기도하는 이슬람국가(IS; Islam State) 세력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반란 세력으로 온갖 잔인무도한 짓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보코하람도 그들에게서 갈라지는 한 가지에 불과하다.

이들의 특징은 그들끼리의 협력이 아니라 헤게모니 싸움과 존재감을 다투는 치열한 경쟁에 있다. 이것 때문에 이들은 점점 더 잔인무도한 공포의 집단이 돼간다. 국가 간의 전쟁은 뚜렷한 전선이 있으나 이들에게는 그들의 전사인 지하디스트가 숨어들어 자폭하거나 무차별 살상극을 벌이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그들의 근거지는 연일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의 막강한 최신 군사력에 의해 폭격을 당해 파괴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축되지 않고 태연한 척 한다. 하지만 결코 무사할 리도 무사할 수도 없다. 그들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이판사판으로 나오는 것은 바로 그들의 근거지가 불안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 예술의 중심 도시 파리에서 저지른 무차별 살상극이나 아프리가 말리의 수도 다바코의 한 호텔에서 저지른 인질 살상극은 바로 그 같은 배경에서 나온 ‘발악(發惡)’이다. 이들의 발악으로 세계는 점점 더 평화에 대해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공포의 경쟁에서는 당장은 IS 세력이 알카에다를 한 발 앞선 것으로 알려진다.

IS는 중동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후계자로서의 국왕이 통치하는 ‘칼리프(Caliph)’ 제국을 건설하기를 꿈꾸며 궁극적으로 세계가 그들을 국가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파리나 말리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잔인한 테러로서 그 같은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결국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다고 볼 때 엄청난 실수일 수밖에 없다. 왜냐. 테러의 불길이 확산될수록 세계 각국의 단합과 연대도 유례없이 강력해져가기 때문이다.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함으로써 서구와 등을 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파리 테러의 피해국인 프랑스를 동맹국의 입장에서 도우라고 러시아군에 의외의 지시를 내렸을 정도다. 중동사태가 난장판이 된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기 대응이 우유부단했던 태도 탓이 크다. 그 미국은 러시아의 깊어지는 시리아 사태 개입에 신경이 곤두서 러시아 견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프랑스를 적극 돕는 모습을 보이면서 뒤늦게 부산해졌다. 뿐만 아니라 IS 격퇴에 힘을 집중할 수만 있다면 러시아와 협력해나갈 의사도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동·서 양 진영의 강국들이 국제 문제에 일제히 덤벼들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만약 완벽하게만 힘을 합친다면 아무리 지독한 IS인들 어디에 발을 붙이겠나.

그런데 대강의 큰 원칙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해도 각국은 각론에서 속셈들이 다르고 복잡하다. 예컨대 미국은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며 러시아는 그 반대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IS 거점들을 폭격하는 척하면서 슬슬 서방의 눈치를 봐가며 아사드를 위협하는 시리아 반군들도 타격한다. 이란도 러시아와 입장이 같다. 이래서는 궁극의 목표인 시리아사태의 해결과 평화의 회복은 어렵다. 지금 시리아에는 연일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의 전폭기와 첨단 미사일 폭격이 비 오듯 쏟아진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총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IS는 박멸되지 않고 있으며 내지를 듯한 비명조차 없다. 반(反)IS전선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모로 보나 IS가 세계를 상대로 결코 이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강대국들이 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가 명실상부하게 단합하고 힘을 합친다 해도 테러 세력은 만만하게 제압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개입 세력에 함정이 될 수 있는 난마 같이 얽힌 종파 및 부족 분쟁이 배경에 있다. 이는 테러리즘이 뿌리 뽑히지 않고 번성하는 토양이며 환경이다. 한국은 당연히 지구촌의 책임 있고 중요한 성원이므로 테러리즘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것은 ‘도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각별한 경각심이 요구되는 때인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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