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최초로 공개된 일본군 ‘위안부’.

평균 나이 열여섯의 꽃다운 소녀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군에게 강제 연행돼 일본군들의 성노예 피해자가 됐다.

70년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다.

위안부의 수난 절정(1944년)
일본은 다른 전선으로 이동할 때 위안부들이 주변을 볼 수 없도록 장막을 쳤다. 정차하고 있는 군 트럭 안에서 한 여성이 손을 밖으로 내밀며 쪽지를 카메라맨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모습이다.

위안부의 절규(1943년)
일본은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1943년에 공포하고 12~40세의 한국 여성을 체포해 전선으로 보냈다. 당시 정신대에 끌려 간 한국 여성은 1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은 한 여성이 임신한 모습.

강제이송 된 위안부들(1943년)
밤늦게 끌려온 한국 여성들이 모두 할 말을 잊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훈시를 듣고 있다. 방바닥에 한국여성용 코고무신과 일본 나막신이 함께 보인다.

위안소 앞 대기
위안소 앞에 일본군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일본군은 밤낮없이 위안소를 찾았다.

위안부 대기실(1943년)
일본은 신상과 국적에 따라 구분해 감금시켰다. 왼쪽은 한국여성, 오른쪽은 중국여성이다. 끌려온 여성들은 주의사항을 듣고 대기실에 감금됐다.

강제동원된 한국 부녀자들
근심이 가득한 한국 여성들이 일본군 위문품을 담은 봉지를 수놓고 있다. 동원된 여성의 표정은 모두 불안하게 보인다. 당시 정신대 또는 위안부의 결정은 일본인들의 선택권리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단 47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일본의 사과.

“우린 돈을 바라는 게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일본이 반성하고 법적으로 사죄해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거야. 다 죽기 전에. 그게 우리의 바람이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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