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물고기’가 그리움으로 가득 찬 호수 속을 헤엄치다가 운명이라는 낚시 바늘에 걸려든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들은 심연에 감춰진 자신의 ‘악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두 남녀에게 예정된 고요하고도 어두운 안식이었다.

작가지만 아직 책다운 책을 펴내지 못한 서인은 아르바이트 겸 정신수련으로 요가 강사를 맡아 일하고 있는 노처녀다. 그녀는 잡지사와의 인터뷰 때문에 우연히 사진작가이자 대학 강사인 선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처연한 운명의 소용돌이는 두 사람을 나락과 천국으로 몰고 가게 된다.

서인은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선우의 실루엣을 그리며 그리움의 환영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와 사귀게 된다. 어머니의 자살, 성폭행으로 인한 낙태 그리고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이…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아이의 ‘고모’가 될 수밖에 없는 악몽 같은 그림자는 늘 서인을 따라붙지만, 선우와의 만남을 통해 차츰 치유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선우는 그녀의 ‘모든 것’이 되고 말았다.

고아인 선우 역시 서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순식간에 자신을 잠식해가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어둠에 묻힌 진실의 상념들로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시린 사랑은 선우의 여제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위기를 향해 치닫게 된다.

서인은 여제자의 사망 사건 이후에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선우의 진실을 추적해 가다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근원을 찾게 된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자신의 시원적 의미를 찾아가듯…. 그리고 그 근원에서 서인은 악마와 천사를 동시에 담고 있는 선우를 발견해낸다. 자신과 선우가 결합한 새로운 생명도 함께….

이중인격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플롯은 자칫 진부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수십 명의 작가들이 사용했던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그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버려진 누런 감자껍질로 때로는 달콤하고 신선한 샐러드가 되기도 한다.

‘4월의 물고기’는 묘한 맛이 난다. 연애·추리·미스터리 소설을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신선하고 다채로운 맛이다. 서정적인 초반 전개와 숨이 가빠지는 후반부는 권태로운 연애소설이나 머리를 쥐어짜는 심리소설에 질린 독자에게 더없이 좋은 코스 요리가 될 것이다.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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