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누리당 주최 중견기업간담회에서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중견기업인들이 제발 한국에서 계속 사업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하면서 목이 메었다고 한다. 지금 상황에선 공장을 외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읍소(泣訴)다. 중견기업은 한국경제의 허리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중간 규모인 기업을 말한다. 3년 평균 매출이 1500억원 이상이지만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군에는 속하지 않는다. 중견기업은 2013년 기준 3846개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총매출 규모 629조원으로 국내 1~3위 대기업 실적을 합친 것보다 많다. 고용에서 약 10%, 수출에서 15.7%, 법인세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견기업들에 대한 제도적 배려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의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은 각종 규제에 신음하고 있다. 기업을 키워 고용과 투자를 늘리면 축배 대신 독배(毒杯)가 돌아온다. 중소기업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혜택은 사라지고, 100개가 넘는 대기업 수준의 규제와 세금 폭탄에 시달리게 된다. 매출액 1000억원과 자산총액 5000억원 중 하나만 넘어서면 세제혜택이 사라지고 지속 성장의 관건인 연구개발(R&D) 자금 지원도 끊긴다. 그래서 성장이 독배였음을 실감하고 사업 규모를 줄여 중소기업으로 되돌아간 중견기업이 2009~2013년 5년 사이에만 328개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인건비와 세금 부담이 낮은 나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기업도 다수다.
대부분의 중견기업인은 중소기업 보호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성장하려는 의욕으로 도전을 거듭해온 분들이다. 독일 경제를 지탱하는 히든 챔피언의 주력이 바로 중견기업이고 중견기업인들을 우대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춰 세계에서 통하는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히든 챔피언인데 이들의 성장 에너지를 독려하고 확산시키기는커녕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식어가는 제조업과 수출의 성장엔진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중견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박근혜 정부는 2년 전 ‘중견기업성장촉진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지만 기업 일선의 불만은 여전하고,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법안은 2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고실업구도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중견기업의 발전과 글로벌화는 독일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히든 챔피언처럼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옭아매는 규제들을 혁파해야 한다. 중소기업 범위의 적정성과 중소기업보호법도 히든 챔피언 탄생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기업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고용 비중 중심으로 세제를 지원하고 인건비 비중이 높은 기업의 법인세를 대폭 낮춰야 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세금 부담 등이 불리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지속적 성장으로 이끄는 경영능력을 입증한 기업인에 대해서는 사업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소득세도 이연시켜 증자할 여력을 주는 방안도 연구해야 한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잇는 사다리이자 성장 동력의 원천이다. 중소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려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올라서는 통로가 활짝 열려야 기업인의 투자 의욕이 살아나고 국민경제의 활력을 찾게 된다.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과 균형 있게 상생·발전하는 경제구조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부의 세습만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도 우려된다. 기업승계도 부의 대물림만이 아니라 기술과 경영노하우의 승계,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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