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부
최영철

막차 전철이 덜껑대며 달군 술기운
어디서부터 저러고 왔는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토라진 부부
하루 이틀 다툰 솜씨가 아니다
금슬 중에 제일이 지지고 볶는 정
저러다 종착역도 못 가 사단이 날 성 싶은데
조상님 돌보셨는지 할아범 호되게 재채기하고
할멈 얼른 손수건 꺼내 닦아준다
그게 머쓱해 잠시 고개 돌렸다가
다시 또 시부렁시부렁 티격태격

[시평]

나이가 들수록 부부 싸움이 더욱 잦아진다고 한다. 서로가 고집퉁이만 늘어가기 때문이리라. 전철 막차에 술기운이 오른 영감과 할머니, 어디에서 사단이 났는지는 몰라도 입이 서로 대발이나 나와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다. 술기운이 오른 할아범 뭔가 한마디 하면, 그 말이 바닥에 떨어질세라 얼른 받아서는 맞받아치는 할멈. 그 말싸움하는 품새로 보아, 싸움의 역사가 어제 오늘이 아닌 듯싶다.

사람살이란 이렇게 싸워가며 정이 드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금슬 중 으뜸이 지지고 볶는 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지고 볶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잠시 얼굴을 돌리고 휴전인 듯싶었는데, 할아범 그만 호되게 재채기를 한다. 지금까지 싸우던 할멈 자신도 모르게 얼른 손수건을 꺼내 할아범을 닦아준다. 싸우고 지져도 부부는 부부로구나. 싸우고 지지면서 사는 게 사람살이, 그게 정이 아니던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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