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광복·분단 70주년을 맞아 분단의 아픔이 서린 1930년대 금강산의 모습을 매주 금요일 지면 연재를 통해 최초 공개한다. 이 사진들은 1935년에 일본이 촬영한 사진이다.

일찍이 금강산의 가치를 알았던 일본은 이를 관광산업 수출자원으로 활용하고자 마케팅을 위해 당시 금강산 구석 곳곳을 다니며 접근촬영을 해 자료를 남겨 책자로 만들었다. ‘명산 일만이천봉 금강산’이란 타이틀로 일어와 영문으로 동시에 소개돼 있다. 그리고 일본은 금강산 일대에 철도까지 놓으면서 안내도를 그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야심찬 계획은 패망하며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 역시 다시 우리 땅이 됐어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쉽게 갈 수 없는 그리운 곳이 됐다. 한때 금강산 관광이 실시됐지만, 이는 일부 지역만 갈 수 있었다. 북에서도 고위 관계자가 아니면 쉽게 갈 수 없는 금강산 구석구석의 절경이 사진을 통해 공개된다.

이 사진들은 기록사진수집가인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관장이 수집한 것으로, 일본은 패망하면서 이 자료집을 거의 유통시키지 않아 희귀한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지금보다는 덜 훼손된 모습들이라 귀중한 자료다.

더구나 최근 1·2차에 걸친 남북이산가족 상봉으로 통일의 염원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라 의미가 깊다. 금강산을 가봤거나 혹은 이북에 고향을 둔 이들에게는 가슴 찡한 그리움의 향수를, 그리고 국민 대다수에게는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 신계사 원경. 소실되기 전 신계사의 모습이다. 일본인 관람객이 거목 아래 서서 신계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상팔담.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있으며, 금강산 8선녀의 전설로 유명하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옥류동 연주담 초입. 사진 오른쪽 아래에 잘 갖춰진 등산로를 오르는 일본인 관광객이 보인다.(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온정리 온천(유황) 입구 모습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월 이겨낸 아름다움 흑백에 고스란히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80년 전 외금강 관광 주요코스는 어땠을까. 이번 호에는 외금강 기본 관광 코스로 안내하고자 한다. 소개되는 사진은 신계사와 옥류동 연주담 초입, 상팔담, 온정리 온천 입구 모습이다.

구룡연과 상팔담으로 가는 코스 입구에 있는 금강산 4대 명찰 신계사는 1951년 6.25 전쟁으로 인해 소실됐다가 2004년부터 2007년 기간 복원됐다. 사진에 소개된 신계사는 소실되기 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은 신계사의 원경을 담았다. 일본인 관람객이 나무 아래 서서 신계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무 크기가 상당히 거대함을 보여주고자 이같이 연출한 듯하다.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인 구룡폭포의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있는데 이것이 ‘금강산 8선녀’의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이다. 금강산 관광 당시 구룡대에서 아래를 향해 바라보면 넋을 잃고 입을 벌리게 만들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땅에 마치 에메랄드 보석이라도 박아놓은 착각이 들게 한다. 80년 전의 상팔담의 모습이라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옥류동 연주담 초입사진은 오른쪽 끝에 잘 갖춰진 등산로에 일본인 관광객이 오르고 있다. 80년 전인 데도 불구하고 제법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다.

마지막으로 온정리 온천입구 모습이다. 온정리 온천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유황온천으로 조선시대 세조가 곪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 깨끗이 낫고 갔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멀리 온천 주변으로 구름이 덮여 있는 모습인 듯하다. 온정리 온천은 현재 노천온천으로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금강산 관광 당시 피로와 휴식을 위해 많이 찾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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