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영 천안자원복지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홍수영 천안자원복지회 회장 인터뷰

한국전쟁 등 어려운 시절 겪으며
‘밥 한그릇 중 반그릇 봉사’ 다짐

자원복지회 구성해 40년간 이웃 사랑
농사 지은 수확물, 양로원·보육원에

‘고구마를 나무에서 딴다’는 아이 말에
학생들 대상 농산물 수확체험 실시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사진으로 보는 것은 배움에 있어 한계가 있는데 아이들이 직접 고구마를 캐면서 흥미를 느끼더라구요.” (25, 여, 천안 청당동 꿈동산어린이집 교사)

“고구마 축제를 마련해 주신 홍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또한 어릴 적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65, 여, 남대문 쪽방상담센터 회원)

“농촌 경험이 없었는데 해 보니 새로워요. 앞으로도 계속 올 것 같아요” (26, 남, 동대문 쪽방상담센터 회원)”

조용했던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농장이 지난달 20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과 차량으로 붐볐다. 직접 심은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서다.

올해 이곳에서 고구마 체험학습에 나선 기관은 30여곳이다. 농장엔 이들 시설 명칭이 적힌 팻말이 큼지막하게 꽂혀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호미로 고구마를 캐 상자와 바구니에 담기에 바빴다. 아이들도 삼삼오오 모여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구마 수확을 도왔다. 흙을 조물거리다가 고구마를 발견하면 꺄르르 웃었다. 이 행사는 5일 동안 열렸다.

▲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농장에서 열린 고구마 축제에서 사람들이 고구마를 캐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들에게 농산물 수확의 기쁨을 선사한 이는 홍수영(72) 천안자원복지회 회장이다. 수십개의 시설에 밭을 빌려주며 무료로 고구마를 심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첫날 행사가 끝난 후 홍 회장을 만나 그의 봉사 인생을 들어봤다.

“저는 고생을 참 많이 한 사람이에요. 남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아요.”

홍 회장은 초등학교 때 6.25전쟁을 겪었다. 흉년으로 밥을 수시로 굶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 건 이웃의 조그마한 베풂이었다. 홍 회장은 “누가 고구마나 감자를 주면 ‘이렇게 맛 좋은 것을 잊지 않겠다. 나중에 커서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반 그릇은 꼭 봉사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며 “지금 봉사회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40여년간 농사를 지어 수확한 쌀, 밭에서 생산된 옥수수·감자·고구마·땅콩 등을 전국 양로원·보육원 등에 보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체험학습을 통한 이색적인 봉사를 할 수 있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준 것은 10여년 전 천안 신아원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과의 대화다. 당시 홍 회장은 고구마를 먹고 있는 이 아이에게 다가가 “고구마는 하늘에서 떨어지나? 나무에서 따나, 땅에서 캐는 건가?”라고 물었고, 그 학생은 “나무에서 따는 거예요”라고 대답을 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홍 회장은 “농사를 해서 갖다만 주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그때서부터 아이들이 직접 농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 학습을 시작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꾸준히 봉사하다보니 많은 이들의 응원도 쏟아졌다. 집에는 그동안 여러 단체로부터 받은 각종 감사패, 위촉장 등 300여개가 빼곡히 걸려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거실에 놔둘 자리가 없을 정도다.

홍 회장은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아내는 내 든든한 지원군”이라며 “수십년 째 손수 고구마, 쌀 등 농산물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넒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작물을 통해 봉사하고 있는 홍 회장은 수입상품이 넘쳐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도 길러주고 싶어 했다. 그는 “높고 메말라서 물기가 적은 논밭이라는 의미의 ‘엇답’이라는 것이 있다”며 “그 ‘엇답’이 현재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 우리 땅에서 나온 곡식을 심고 거두어 이웃들과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인터뷰 중간 중간마다 고구마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홍 회장을 찾아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 양손에 한가득 들려 있는 고구마가 홍 회장이 전해주고자 했던 따뜻함을 고스란히 품고 가는 것 같았기 때문.

“우리 주위엔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홍 회장의 말처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기부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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