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삼국사기 ‘열전’ 온달 편에,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못 말리는 울보였던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과 결혼해 남편을 훌륭한 장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다. 평강 왕의 딸이라 해서 평강공주라 부르는 것이다. 고구려의 왕족이 고(高)씨였으니, 고씨 공주였던 것은 틀림없다.

기록에 따르면, 온달은 생긴 게 멍청하게 남의 웃음거리가 됐으나 속마음은 순박했다. 집이 몹시 가난해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왕래했다. 아이들이 온달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놀려 댔다.

평강 왕이 울보 딸에게,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버리겠다고 겁을 준 것을 보면, 온달은 이미 유명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요즘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방송 한 번 잘 타면 바로 스타가 되지만, 아득한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거리의 노래가 세상의 소식과 민심을 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칭기즈칸도 노래를 만들어 민심을 끌어들였고, 이성계도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이씨가 왕이 된다는 노래를 퍼트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온달도 아이들의 노래 소리에 실려 왕의 귀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공주가 커서 마침내 궁궐을 나오게 된다. 그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지 어쨌는지, 공주는 궁에서 나와 온달을 찾아 간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공주는 온달의 집에 찾아가 신혼살림을 차린다. 온달의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했지만, 호박이 넝쿨째 제 발로 굴러 들어오겠다는 데 어쩌랴. 요즘으로 치면 로또를 맞은 것이다. 대박이다.

결정적으로 공주는 빈손이 아니었다. 궁을 나올 때 금덩어리를 잔뜩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걸 밑천 삼아 남편을 장수로 키운 것이다. 공주가 온달에게 처음 시킨 일은 시장에 나가 말을 사오게 한 것이다. 볼품은 없어도 궁에서 쓰던 말을 사오도록 하여, 잘 먹이고 잘 보살펴 명마로 만들었다. 그 놈을 타고 온달이 활도 쏘고 칼도 휘두르며 들판을 달린 끝에 무과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랐던 것이다.

평강공주와 온달은 신분을 초월한 멋진 사랑 이야기로 전해 온다. 여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남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평강공주 신드롬이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여성의 힘을 빌려 성공하고 싶어 하는 것도 평강공주 신드롬의 한 패턴이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아내의 가게 문을 열고 닫아주는 ‘셔터 맨’이 꿈인 남자들이 엄청 많다. 하지만 그런 복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하게 된 박병호 선수가 화제다. 보도에 따르면, 박병호 선수의 아내는 결혼 전 ‘돈은 내가 벌겠으니 당신은 야구에만 전념하라’고 했다. 그게 엄청남 힘이 됐다고 한다. 평강공주가 따로 없다. 선수 자신에게도 타고난 자질과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부부가 조화를 이뤄 멋진 결과를 이뤄낸 것이다.

평강공주 아내를 꿈꾸는 것마저 뭐라 할 수 없다. 등골 휘는, 별 볼 일 없는 가장들에게 꿈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꿈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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