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강진에 의한 아이티의 참상은 차마 눈뜨고는 보기 어렵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중심으로 10만 내지 20만 명이 죽거나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아픔에 감전(感電)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에 산다는 것만도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지진은 자연 현상이며 사람에게는 자연재앙이다. 지진은 사람의 지혜나 과학의 힘으로도 막아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고 지진 발생 시의 행동요령을 숙지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아이티의 지진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것은 지구상에서 지진에 가장 취약한 지역임에도 대비가 전연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통령 궁까지 폭삭 주저앉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건물은 내진설계가 안된 날림 건물이 즐비했다. 뿐만 아니라 1백 50년 전(1860년)에 큰 지진을 겪은 후 10년에서 50년 간격으로 간헐적인 지진의 엄습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재난 훈련이 충분히 돼있지 않았다.

‘스스로’ 구하고, ‘스스로’ 돕지 않는 사람이나 나라는 하늘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티는 지난 2008년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국가기간시설을 비롯한 사회경제적인 인프라가 거의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었다. 이때 입은 피해에 대한 복구가 시간을 앞당기려는 욕심만 앞세운 부실시공, 날림공사였다. 기왕에 벌이는 복구 작업이라면 과거 지진을 교훈삼아 ‘시간’이 아니라 ‘내진(耐震)’을 앞세워 미래의 비극에 대비하는 복구였어야 옳았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현지시간으로 지난 12일 새벽 5시에 일어난 강도 7.0의 강진의 피해를 더욱 키워놓았다.

그 지진은 포르토프랭스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땅속 10킬로미터 지점이 진앙(震央)이었다. 이렇게 진앙이 가깝고 얕았기 때문에 전연 재난에 대한 준비가 안 된 포르토프랭스는 그 직접적이고 완충 없는 충격에 그야말로 폐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아이티는 무정부 상태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과 같은 인공구조물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통치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 결과로 아이티는 법도 질서도 도덕도 사람사이의 체면도 없는 무법천지가 됐다. 당연히 국민과 슬픔을 같이 하면서 사고 수습을 지휘해야 할 국가 원수마저 행방이 묘연하다. 이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도덕적 해이이다. 이런 국가원수가 이끄는 무책임한 정부였기에 아이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고스란히 자연재앙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악명 높던 뒤발리에 부자의 세습 폭정을 겪은 아이티 국민들이다. 그럼에도 도덕적으로 해이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이티 국민들의 불행과 고생이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좋은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책임 있고 유능한 정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 역시 큰 축복인 것 같다.

지구촌의 행·불행도 돌고 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인 인간지사(人間之事)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지구촌에 자연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꼭 자연재앙이 아니더라도 남의 불행을 돕고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이렇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지구촌 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이자 올해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들의 모임인 G20정상회의의 개최국이다. 이러한 국가의 위상과 국격(國格)에 걸맞는 지원을 아이티에 베푸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남을 도와줄 때 물질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두 손으로 정성을 다해 주자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전해지는데 이에 공감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능력이 닿는 대로 민·관이 힘을 모아 정성껏 도와서 당당한 지구촌 주요국으로서의 면모와 인도주의를 과시하는 것은 남을 도와서 좋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다.

우리가 지진으로부터 큰 불행을 겪은 일은 없지만 그렇다 해서 지진 안전지대라고 안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안 보이지만 지각판과 단층선들이 쉼 없이 움직이는 깊은 땅 속의 일을 어찌 알랴. 이에 대비하는 것은 당장 낭비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진뿐이 아니다. 수재와 산불, 고층건물의 화재 등은 우리가 수시로 겪는 일이다. 아이티 참상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런 일에 민관이 미리 미리 대비해두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왕에 하는 4대강 정비 사업도 매년 되풀이되다시피 하는 수재예방 기능을 더 보강해 추진된다면 보다 나을 것 같다.

어떻든 아이티의 참상이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에 골몰하는 우리가 그 같은 내부의 분위기를 벗어나 각종 자연재해나 재난은 물론 무엇보다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국가 안보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점검하고 대비하는 계기가 돼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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