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올가을에는 스포츠에서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대호 선수가 소속팀인 소프트뱅크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일본에서 활약한 우리 선수들이 많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가 된 것은 이대호가 처음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된장 바른 콩잎을 팔아 야구선수인 손자의 학비를 대고 뒷바라지를 한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터라 그 성공이 더 값지고 귀하게 여겨진다.

우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이 5연패를 노리던 삼성을 꺾고 우승했다. 두산그룹 회장의 남다른 야구 사랑도 새삼 화제가 됐고, 두둑한 보너스를 챙기게 된 선수단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응원한 두산 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삼성 선수들이 덕아웃 앞에 나란히 도열해 우승팀을 축하해 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지고도 이긴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축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17세 이하 대표 선수들이 세계 최강 브라질을 잡고 무실점으로 일찌감치 16강에 오르는 쾌거가 있었다.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우리 축구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성적이었다. 세계 무대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월드컵 등 세계 대회에 나가면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기가 죽어 있던 그 옛날의 우리 선수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17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었던 최진철 감독도 조명을 받았다. 선수 시절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강력한 수비라인을 꾸려 4강 신화의 발판을 만들었던 최 감독이다. 2006년 스위스월드컵에서는 머리 부상으로 과일 싸는 스티로폼 비슷하게 생긴 붕대를 감고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번에 감독을 맡으면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힙합을 부르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등 소통 리더십의 본을 보였다고 한다.

올해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중국 프로축구 2부 리그에 활약하고 있는 연변 팀이 매년 꼴찌를 했는데, 올해는 1등을 했다. 덕분에 내년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뛰게 됐다. 연변 팀이 승승장구하며 우승하자 중국의 2백만 조선족들이 연변 팀의 열렬한 팬으로 거듭나고 있고, 자부심도 커졌다고 한다.

연변 팀을 이끌고 있는 박태하 감독의 리더십도 칭찬을 받고 있다. 박 감독은 선수들 중 열에 일곱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했고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박 감독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선수들도 감독을 믿고 따랐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묵을 호텔과 음식을 잘 챙겨주고 월급도 날짜 맞춰 지급해 줄 것을 구단에 요청해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땀 흘린 만큼 결실을 맺고 성취의 단맛을 즐길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귀한 교훈을 안겨 준 일들이었다.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상명하복 리더십보다는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이 시대적인 요구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스포츠의 귀한 가치들이 많이 공유되고 확산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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