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송순태(1941~ )

닝겔 주사를 맞고 있는 사람의 병상 곁에서는
이미 말이 끝난 시간들이 보인다.
손을 잡고 회복을 비는 동안에도
똑똑 추락하는 저 투명한 것
한 때는 잔이 넘치며 저녁 목로집 소줏병처럼 낭비되던 것
고래고래 소리쳐 노래 부르던 싱싱하고 푸르던 것
너무 가득해서 어떠한 길도 좁았던 그 출렁거리던 것
이제 저렇게 맑은 병 안에 낙루하고 있는 것은
처음 몸 안에 채워져 충만했던 것이
한 생애 쉬지 않고 낭비되었다는 기록일 것이다
절대안정, 절대평화, 그 절대 단애로 둘러싸인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도 외람된 조용한 방
이제는 흰 벽을 배경으로 하나 뒤에 하나, 또 하나… 방울져
아주 질서정연하게 끊어져 나가는 그리움과 망각의 마지막이 보인다.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사람은 적멸의 산야에 들어섰는지
일체를 놓은 듯 그 단단했던 주먹은 열려있다
오랜 잠을 연습하듯 잠든 사람의 눈에 남은 눈물같은 것
잠시 머뭇거리다가 방울지고 떨어진다.
그 방울과 방울 사이를 빌려 살았던
한 생의 끝이 보인다.

[시평]
중환자실, 이미 말이 끝난 중환자 곁에는, 마지막 회복을 비는 보이지 않는 희망만이 하나, 하나 떨어지는 링거의 방울마냥 떨어지고 있다. 간단없이 떨어지는 하얀 액체를 바라보는 뇌리에는, 지난날들이 주마등마냥 지나간다. 한때는 잔이 넘치며 저녁 목로주점 소주병처럼 낭비되던 것. 고래고래 소리쳐 노래 부르던 싱싱하고 푸르던 것. 너무 가득해서 어떠한 길도 좁았던 그 출렁거리던 것. 그런 것들이 지금은 링거의 관을 타고 한 방울 한 방울 머뭇거리듯 떨어져 누워있는 환자의 체내로 스며든다. 그리움과 망각의 마지막이 보이는 시간. 일체를 놓은 듯 단단했던 주먹이 열려지고, 그 열려진 사이로 절대안정, 절대평화, 마지막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보며, 방울과 방울 사이를 빌려 살았던 한 생의 끝을 바라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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