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 상임이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인추협, 고진광 상임이사 인터뷰

(사)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 이사장 이윤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고진광 상임이사는 한파가 몰아치는 한밤중에 산동네 쪽방을 수시로 급습(?)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 절박한 상황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추협은 이렇게 철저한 실사를 거쳐 2008년 겨울부터 2010년 1월까지 서울, 부산, 대구, 제주까지 300여 빈곤가구에 보일러를 설치했다. 주인이 반대해 보일러 교체를 못할 때는 유류비를 지원했다.

이윤구 이사장의 제안으로 2008년부터 ‘함께 살아요! 고통을 나눠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인추협이 선정한 대상자는 정부의 저소득층 수혜 대상에 포함되지 못해 수혜 사각지대에 놓인 신빈곤층이다.

세계적 경제 공황으로 가정이 무너지면서 조부모와 손자가 같이 사는 조손 가족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자식이 있거나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실업으로 쪽방촌을 전전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쪽방촌은 보일러 교체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주로 유류비를 지원한다.

인추협이 특별히 조손가정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에는 지금 이 나라의 기초를 닦은 노년층에 대한 고마움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세월의 뒤안길에 밀려나긴 했으나 그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이만큼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처음 신빈곤층을 돕자는 취지에 힘을 보탠 사람들은 6명의 대학로 노점상인들이었습니다. 보름 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번 돈을 전부 모았더니 185만 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단속이 심해서 모금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 이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함께 겪는 이들이라며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이옥녀 할머니 집 보일러를 교체해 드리고 왔습니다. 아들 내외가 헤어져 중학교 2학년 손자와 고등학교 2학년 외손녀를 할머니가 거두어 기르고 있었는데, 모두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6년째 겨울이면 냉골 바닥에서 서로의 몸을 보일러 삼아 살고 있더군요.”

고 이사는 현 정부의 빈곤층 지원책에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동사무소와 사회복지관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부 지원대상이 아니라며 번번히 외면당해 왔다더군요.”

이 할머니 가족은 서울에서 대구까지 보일러 장비를 싣고 내려간 외인들에 의해서 비로소 냉골 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고장 난 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교체해 드리고, 창고처럼 짐이 쌓여 있던 옆방은 치우고 도배해 외손녀 방도 하나 만들어 주고 왔습니다.”

고 이사는 정부 수혜 대상자들은 수시로 외부지원도 이어지지만, 이 같은 조손가정은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혜 대상에서 제외돼 참담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법적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식이나 손자들과 호적을 분리해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으로 위장 등록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작 거짓말 못하는 이들은 동사무소에 가서 눈물로 호소해도 법적 기준에 맞지 않다며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할머니 주변에서도 손자들을 소년 소녀 가장으로 호적을 분리하면 수급대상이 될 수 있으니 그리 하라고 권면을 여러 번 했지만 이 할머니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고 이사는 이 할머니가 “내 자식은 자식(손자)을 버렸지만, 나(할머니)는 손자를 버릴 수 없다. 그리고 어떻게 손자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느냐”는 말을 했을 땐 모두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추협의 이런 활동은 입소문을 타, 딱한 이웃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전국에서 빗발치고 있다. 설치비는 조금 더 들지만 유지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대부분 연탄보일러를 놓는다.

이렇게 한 가정 연탄보일러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은 160만 원 정도다. 운영비는 모두 회원 700~800명이 주머니에서 십시일반으로 해결했다. 가스보일러 교체비는 이보다 저렴한 60만 원 정도다.

서울시 교육청 직원들이 모금해서 주려고 하자, 고 이사는 교육청 직원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장비를 같이 사서 수리하러 다녔다. 모금한 돈도 투명하게 운용하고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같이 (물건 사러) 다니자는 말에 퉁퉁 부었던 공무원들이 함께 봉사를 하고 나서는 모두 인추협 회원이 됐다.

고 이사는 봉사하면서 얻는 효과는 크게 세 가지라고 했다.

“수혜자들이 정말 큰 희망을 품게 됩니다.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따뜻한 사회가 있다는 걸 느끼면 태도나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봉사자들도 내 주변에 너무 어려운 이웃을 보면서 자신의 가정, 직장, 부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돼 새롭게 변화됩니다.”

고 이사는 “인간성 회복의 시작은 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고통을 나누고, 함께 살 만한 따뜻한 사회가 될 때 이루어지는 것 같다”며 “올해 말까지 1천 가구가 냉골 방을 벗어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원 요청이 많다 보니 안타까운 일도 더러 발생한다.

지난 겨울 창신동 쪽방에 세를 든 할머니와 도로 공사 때문에 몇 개월째 쉬는 노점상 젊은이의 보일러를 교체하러 갔다가, 주인이 반대해서 바로 교체를 못하고 온 일이 있었다.

얼마 후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로부터 “젊은이가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불길한 마음에 112에 먼저 신고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젊은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인(死因)은 동사(凍死)였습니다. 며칠만 더 일찍 갔더라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렇게 춥고 배고파 죽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혜 대상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는 이웃들은 의외로 우리 주변에 있다.

가난한 이들은 무허가 건물에 사는 경우가 많아, 공무원이 돕게 되면 불법을 양산하는 모양이 된다. 고 이사는 이처럼 공무원들이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게 되어 있는 사회복지 정책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5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스스로 달려간 40여 명이 인추협의 기초가 됐다. 여러 모양으로 지금까지 맥을 이어온 인추협 사람들은 지금 아이티에 10명의 자원봉사단 파견을 준비하고 있다.

역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1인당 600여 만 원의 체류비가 있어야 하기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고통을 나누는 그들의 사랑만은 펄펄 끓는 보일러보다 더 뜨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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