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동족상잔의 비극은 강산을 잿더미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가 됐고, 가장 희망이 없는 나라가 됐다. 그 터 위에서 반드시 우리는 살아나야 했고 일어서야 했다면, 일등과 개발과 성장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그 정신은 숭고하기까지 했으며, 그 결과가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일궈냈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오늘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중견 기업의 광고 멘트 중에 ‘사람이 미래다’라는 글귀처럼 사람이 배제된 문명의 이기는 더 이상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왜냐면 문명을 일으키는 이유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문명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잿더미 위에서 일으킨 눈부신 성장은 OECD 중 자살률 1위, 청소년들이 가장 살기 어려운 나라 등의 불명예를 낳았다. 이처럼 희망과 목적을 가질 수 없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근본을 찾아 나서게 했고, 오늘날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한 이유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인문학이란 뭘까.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면, 인간의 근본을 그 어떤 학문으로 탐구해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연구한 학문으로 인간의 근본을 알 수 있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닌가.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가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 역시 창조주이신 신의 창작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근본에 대한 것도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라야 그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즉, 종교다. 종교는 하늘 즉, 신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신에 의해 창조됐으니 그 신의 가르침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근본 문제 즉,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인생에 있어 생로병사는 당연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이 만든 학문으로 변죽은 울릴 수 있겠지만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황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고 이이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했다면, 그야말로 사람의 생각과 연구일 뿐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제자들은 각기 또 다른 학문과 이론을 만들고, 그 같은 학문은 사설이 되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인해 분파와 붕당을 가져와 사회와 나라와 인류를 어지럽힐 뿐이다. 다만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 산물들이기에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간직되고 보존돼야 함은 당연하다.
석가는 카필라성이라는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나름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지만 “왜 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신을 찾았으니 바로 종교다.
이 종교를 한자로 보면 ‘宗敎’다. 즉, 하늘의 것을 보고 그 본 것을 가르친다는 뜻이니 곧 ‘신(神)의 가르침’이다. 신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알게 하는 것이다. 또 종교를 영어로 보면 ‘religion’이다. 이는 ‘re’와 ‘ligare’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됐으니, ‘다시 연결하다’는 의미다. 무엇을 다시 연결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신과 사람을 다시 연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먼저는 신과 사람이 끊어져 있으니 다시 연결한다는 것이며, 끊어지기 전에는 원래 하나였고 함께했다는 얘기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원래 신과 인간은 하나였고 함께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끊어져 있으며, 끊어진 신과 인간을 다시 원래대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종교요 종교의 회복이요 신의 뜻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끊어졌을까. 도대체 종교의 역사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나아가 이어지고 하나 되는 때는 언제이며, 하나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이것이 진정으로 인간이 찾아야 할 근본이며,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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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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