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로 알려진 ‘히젠도’ (사진제공: 문화재제자리찾기)

조선의 국모를 살해한 칼 ‘히젠도’
일본 쿠시다 신사에 기증, 보관돼
기념품처럼 보관… 모욕적인 처사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조선의 국모가 일본군 자객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895년(을미년) 10월 8일 새벽에 일어난 이 사건은 일본인 작전명 ‘여우사냥’으로 불린 을미사변이다.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 600명과 훈련대 800명, 낭인 56명은 경복궁에 난입,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乾淸宮)으로 달려가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고 그 유해(遺骸)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명성황후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한줌의 재가 된 명성황후는 향원정에 뿌려졌고, 장례식은 고종의 아관파천 등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무려 2년 2개월 동안 치러지지 못했다. 한 나라의 왕비를 무참히 난도질한 칼 ‘히젠도’.

▲ 명성황후가 사망한 지 2년만인 1897년 11월 27일에 치러진 명성황후 국장 사진 (사진제공: 문화재제자리찾기)

이 히젠도가 일본 쿠시다 신사(神社)에 기증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가 지난 2006년 문화재 환수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알아낸 사실이다. 전체 길이 120㎝, 칼날 90㎝의 히젠도를 눈앞에서 직접 봤다는 혜문 대표는 “그 긴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으스스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히젠도의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칼의 주인인 토오 가츠아키가 사건 당일 작전명 ‘여우사냥’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것으로 알려졌다. 토오 가츠아키는 당시 명성황후 살해 혐의로 현상수배 됐던 사람이다.  

히젠도가 신사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지난 2010년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와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최봉태 변호사 등이 ‘히젠도’ 압수 폐기를 요청하는 ‘히젠도 환수위’를 구성해 일본 정부와 쿠시다 신사를 상대로 활동해 왔다.

‘히젠도’ 압수 폐기와 관련, 지난 10월 29일 히젠도에 대한 처분 촉구 결의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김민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명성황후 살해에 사용된 히젠도 처분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을미사변이 발발한 지 120년을 맞아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에 소장된 히젠도가 적절히 처분돼 한일 양국 관계 개선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모를 살해한 범죄도구를 민간에서 기념품처럼 보관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모욕”이라며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대한 공식사과, 을미사변 당시 살인도구로 사용된 ‘히젠도’를 압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히젠도’에 대한 적절한 처분을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결의안 공동발의에는 이종걸, 이인영, 강기정, 장병완, 정청래, 홍종학. 황주홍, 신경민, 김승남, 박완주, 유은혜, 이개호, 부좌현, 김현 의원이 참여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