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서효심 기자] 서울 도심 한가운데 500년 역사를 품은 조선의 첫 번째 궁궐 경복궁이 있다.

조선 태조 4년에 완공된 경복궁은 왕실의 위엄과 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광화문을 통해 흥례문(興禮門)을 지나게 되는데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이었다. 1867년에 중건하면서 흥례문으로 고쳐 썼다.

흥례문을 지나게 되면 근정전[勤政殿]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근정문[勤政門]은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총 3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큰 문으로는 왕만이 드나들었다.

근정문을 지나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볼 수 있다.

왕실을 상징하는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두 단의 월대위에 높게 세워져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大禮) 등이 거행됐던 곳이다. 현재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근정전에는 임금의 권위와 위험을 나타내는 증표로 십이지신상과 월대 난간에는 주작, 백호, 현무, 청룡 등 사방신이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북서쪽으로 들어가면 방형 연못 안에 세워진 경회루를 만날 수 있다. 연못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다.

경회루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왕이 국빈이나 신료들과 연회를 베풀 때 주로 사용됐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수려한 품에 안겨있는 경회루는 궁궐 속에서 마치 신선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었다.

‘경회’라는 것은 군신 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사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사람을 잘 얻고 잘못 얻는 데 있다. 대개 인군(人君)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은 그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참담한 조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의 역사의 증인이 된 지금의 경복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지만, 아직도 완공 때의 모습을 온전히 찾지는 못했다.

조선왕조의 시작과 끝의 역사를 가진 경복궁. 500년 도읍의 중심이란 장엄한 역사와 함께 외세 침입과 근대문명의 발달사를 함께 품어온 역사의 증거물로 하루빨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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