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한적한 골목길이나 공원에 나가면 가을벌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던 매미 소리는 오간 데 없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매미들이 사라지고 나니, 귀뚜라미가 나타나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벌레가 우는 것은 수컷들이 암컷을 꾀어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것. 여름에는 매미들이, 가을에는 귀뚜라미와 베짱이들이 온 몸으로 구애의 노래를 부른다. 운이 좋아 사랑의 결실을 맺은 놈들도 있겠지만, 노래만 실컷 부르다 허망하게 세상을 하직한 놈들이 더 많지 싶다.

1930년대만 해도 가을이 되면 서울 거리에 베짱이 장수가 나왔다고 한다. 바가지를 씌우는 염치없는 장사꾼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베짱이를 파는 사람이었다. 작은 상자 속에 든 베짱이를 사다가 안방에 갖다 놓고 그 울음소리를 감상하는 것이다. 안방의 베짱이가 울면 바깥의 다른 베짱이들이 덩달아 연주를 하게 된다. 베짱이 주인은 안방에 팔을 괴고 누워 자연의 대합창을 듣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베짱이 놀음이다.

베짱이는 베를 짜라, 하는 소리로 들려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소리도 듣는 사람마다 다 다른 모양인지, 고려시대 이제현은 귀뚜라미 소리가 베를 짜라는 소리라 했다. 그는 이렇게 시를 지었다.

‘베를 짜라 베를 짜라 재촉하는/ 슬픈 울음소리 측은도 해라/ 밤새도록 베틀 소리 베 짜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한 치의 베도 없네’

그 옛날, 베를 짜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졸음을 쫓으며 밤새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짜야 하는 삶이 어찌 고단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가을 밤 동이 트도록 베를 짜면서 듣는 귀뚜라미 소리가 ‘얼른 베를 짜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슬프게 들렸을 것이다. 그래, 귀뚜라미를 촉직(促織)이라 했다.

귀뚜라미는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서둘러 온다. 음력 7월이면 벌써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조상들은 눈치 빠른 사람을 7월 귀뚜라미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귀뚜라미의 청아한 울음소리는 가을밤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데 그만이다.

천재 시인 이상(李箱)도 이렇게 썼다.

‘홀로 귀뚜라미는 속세의 시끄러움에서/ 빠져 나와 이 인외경(人外境)에 울컥하게/ 철학하면서 야위도록 애태우는 지독한 염세가(厭世家).’

가을 하면 메뚜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시조시인 최승범 선생은 “메뚜기 소리는 입이나 뒷다리로 내는 소리다. 벼 잎을 잘도 갉아 먹을 때 나는 소리는 다음과 같은 사근거리는 소리다. 사글사글, 냠냠”이라 했다. 선생은 또 메뚜기가 날 때 ‘푸르릉 푸르릉’ 소리를 낸다고 했다. 메뚜기를 잡으려 하면, ‘푸르릉, 아나 날 잡아라’ ‘푸르릉, 약 오르지’ ‘푸르릉, 약 올라라’ 하며 약을 올린다는 것이다.

가을벌레들은 앞날개를 비벼 소리를 낸다. 날개 한 쪽이 현악기의 현 역할을 하고, 반대편 날개가 활 노릇을 하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곤충도 두 날개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

미물이라고 얕보는 벌레들에도 배울 게 있다. 올 가을에는 벌레소리라도 실컷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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