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내용으로 다가가 보자. 천지시론은 이 시대 신앙을 진단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엔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신앙을 생활화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저 착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일까. 그걸 위해서라면 종교가 아닌 세상의 가르침과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답을 얻을 수 있다. 신앙 곧 종교는 하늘(神)의 뜻을 깨닫고자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宗敎)를 ‘으뜸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적어도 자기 종교의 경서를 통해 그 뜻을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그 경서를 통해 신앙의 목적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세상의 복이 아닌 ‘구원(救援)’이며 신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참된 복(福)이다. 종교의 경서가 사치품이나 액세서리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며, 신앙 또한 ‘무조건 믿습니다’ ‘덮어놓고 믿습니다’로 일관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누구나 신앙을 한다면 이처럼 참된 복인 구원을 얻고자 신앙생활을 하며 또 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 신앙으로는 구원 얻을 자가 없다는 데 놀라야 할 것이다.

종교의 부패와 타락이 가져다 준 산물, 즉 기복신앙이 결국 하늘의 것을 사모하게 하기보다 땅의 것을 사모하게 했으니, 바로 권력·명예·돈이다. 땅의 것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한 것이지만 하늘의 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같이 종교의 목적성을 상실한 종교세계는 종교세계의 끝, 즉 말세(末世)를 맞이한 것이다. 이 말세는 누가 가져다 준 게 아니라 이 시대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세의 끝에 와 있으니, 오늘날을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고 하는 것이며, 신앙의 종점에 이른 것이다. 어찌한단 말인가. 구원을 얻고자 신앙을 열심히 해 왔건만 구원 대신 신앙의 종말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이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구원에 대한 의미다. 구원의 역사는 먼저 멸망 받아 죽어가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죽어가고 멸망당하는 일이 없는데도 구원이라는 말은 이치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신앙의 끝, 즉 말세를 맞아 멸망 받는 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오해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함정인 것이다. 내가 종교의 참된 가르침을 받아 구원이 아닌 종교세상의 끝, 즉 멸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누군가 혹은 어디선가 내미는 구원의 손길을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말세의 의미다. 말세는 지구촌의 종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전도서에 기록되기를 “한 세상은 가고 한 세상은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고 했으니, 그 증거다. 가는 세상 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성서를 보자. 2천년 전,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밭에 씨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와서 추수할 것을 약속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를 농사(農事)라는 세상의 이치를 들어 설명하는 내용이다. 밭은 세상이라 했고, 그 밭에 씨를 뿌린다고 했으니,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말씀이 뿌려진 밭은 오늘날 예수교라는 기독교 세계며 크게는 종교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씨가 자란 후 추수할 것을 약속했으며, 그 추수 때를 세상 끝이라 했다면, 또 지구촌 어디선가 영적(靈的) 밭인 교회에서 영적 추수가 있어지고 있다면 예수교라는 한 세상이 끝나는 곧 종교말세가 분명하지 않은가.

영적추수라 했으니, 추수할 대상은 세상의 익은 곡식이 아닌 구원 받을 신앙인 즉, 사람이 아니겠는가. 추수가 끝나면 씨 뿌린 밭은 농부에 의해 갈아엎어져 그 밭의 사명은 끝이 나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한 이유다. 이처럼 부패하고 타락한 선천(先天)세상은 끝이 나고, 후천(後天)세상 곧 새로운 세상 새 종교가 출현한다는 얘기다. 창조주의 섭리 가운데 우주만물이 고대해 왔으며, 종교의 목적이기도 한 새 종교가 출현한 것이다. 어쩐단 말인가. 이처럼 새 세상이 오기 위해선 이전 세상은 가줘야 하니 말이다. 이를 경서의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라고 했다. 또 유학자 남사고 선생을 통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으니, 지나간 구(舊) 시대에 미련을 갖지 말고, 도래할 새 시대를 기쁘게 맞이하라는 뜻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호시절(好時節)’이기 때문이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만물고대(萬物苦待) 신천운(新天運)’이라 했듯이, 만물이 학수고대하는 것은 바로 새 하늘 즉, 종교의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시대가 열리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 선천시대 즉, 사망이 왕노릇 하던 시대는 끝나고 후천시대 즉,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가 오면 항상 봄철 같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람이 늘 청춘이라(四時長春 新世界 不老不死 人永春)”고 했으니, 이 또한 그 증거다. 석가도 인류가 풀지 못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가를 했으니 유불선 모든 종교를 통해 찾아야 할 답은 오직 하나였다.

이러한 종교의 가르침과 목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의 가르침으로 변질된 오늘날 종교세계는 그 종말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 종말을 맞은 이 시대를 남사고는 미리 잘 예언해 놨으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언서인 성경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영영 생각조차 아니 하도다(上帝豫言 聖經設 世人心閉 永不覺)”고 했다. 결국 “모든 종교가 구태의연하게 신앙을 하며 각자 자기 종교에 골몰해 문장(선생)은 있어도 말씀(道)이 없어 쓸모가 없구나(末世滑染 儒佛仙 無道文章 無用也)”라고 했다면, 말세의 징조다. 이러한 때 “하늘은 한 사람을 택해 하늘의 양식을 먹여주고, 신앙의 목적인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해 준다(天擇之人 三豊之穀 食者永生 火雨露)”고 했으니, 신앙의 종점을 맞은 이 시대는 참으로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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