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천하절승의 금강산이 눈물의 바다가 되고 있다. 이산가족들의 70년 한이 1만 이천 봉우리처럼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0년간 이산가족 문제는 사회적 현상이고 분단과 전쟁의 상처였으나, 오랫동안 남북 간 정치적 공방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누가 이산가족인가라는 정의조차 분명하게 내리지 못한 채 2000년대에 이르렀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산가족의 모습은 시기마다 드러나는 양상이 달랐다. 예를 들면 1950, 1960년대에 이산가족이라 하면 대개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가족을 가리켰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에 오면 흔히 ‘월남인’을 가리키게 됐다. 그리고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2003년 2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가운데, 북측 이산가족 명단에 월남인 유가족이나 월북인 외에 납북인, 국군포로, 납북어부 등이 포함되면서 이산가족 문제는 단순히 정리되지 않는 문제가 됐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산가족의 비극은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의 공녀제도(貢女制度)와 홍건적·거란족의 침입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정유재란 및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의 연이은 외침(外侵) 속에서도 가족이산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이산가족은 전쟁과 정치적 격동의 부산물로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진행형이다.

한반도 이산가족의 원형은 조선시대 말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해외로 강제이주 되어간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의 이산가족은 중국이나 구소련, 하와이, 일본 등지로 떠나는 이주자들(강제이주자들 포함)이 발생하면서 국내 유가족들과의 이산을 통해 형성됐다. 중국이나 구소련, 일본으로 이주한 상당수의 이주자들이나 일제의 강제징용, 징병정책으로 사할린이나 동남아 등지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과 연락을 하거나 상봉조차 어려웠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해방이 돼 귀환했지만, 귀환하지 못한 채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수백만여 이산가족들은 결국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욱 멀어지게 됐다. 그리하여 한반도 밖의 해외 이산자들은 한반도에 세계적 탈냉전의 온풍이 불어오기까지 오랫동안 전형적인 이산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더불어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고착화된 분단은 이 땅에 이산가족을 낳는 새로운 악조건이 됐다. 전자는 다시 광복 후 38선이 장벽화됨으로써 가족재회가 불가능하게 된 경우와 중국·러시아 등지에 있다가 귀환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로 분류할 수 있고, 후자는 6.25전쟁 중 자유를 찾아 월남한 경우와 강제 납북된 경우로 대별할 수 있다.

한국의 현행법에 따르면 남북 이산가족이란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현재 군사분계선 이남지역(남한)과 군사분계선 이북지역(북한)으로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였던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산가족 중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전에 북한지역에서 월남한 자와 남한지역에서 월북한 자의 당시 가족을 이산 1세대로 규정하고 있으며 휴전 이전에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서 출생한 남한의 주민을 실향민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분단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산가족 당사자인 1세대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고령이나 사망으로 급격히 감소되고 있어 교류와 재회의 시급성이 증대되고 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1세대 실향민은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이고, 역설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는 점차 소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헤어진 지 이미 반세기가 넘어 후계 세대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가족에 대한 친밀감과 관심도가 적어 이산가족 문제의 본질이 흐려질 우려가 매우 높다. 결과적으로 향후 10년 안에 본질적인 ‘이산가족’은 그 용어조차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 금강산에서 벌어지는 감격과 기쁨, 슬픔과 행복의 휴면드라마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는 과연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서 이산의 아픔을 겪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등 두드려 주었는지 자신에게 냉철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가슴 아픈 당사자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우리 모두도 인도주의를 저버린 ‘정신적 박약아’임을 한 번쯤 반성해보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