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세계 피겨 여왕 김연아의 우상 미셸 콴이 새해 벽두 1주일간 한국을 다녀갔다. 지난 해 8월 김연아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이후 두 번째 방한이었다. 이번 방문은 좀 특별하다. 미 국무부의 문화대사(Public diplomacy envoy) 자격이었다. 말 그대로 하면 ‘공공외교특사’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책이라 정확한 번역이 어렵다. 쉽게 얘기해서 미국정부의 홍보대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정부나 공무원들이 할 수 없는 민간부문의 외교관이었던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전 세계 시민과 교류하며 스포츠 문화의 외교적 중요성을 알리고,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와 우호 증진을 이끌며 특히 한국인에게 ‘Love America’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게 목적이었다. 

따라서 방한 일정도 공식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대사관 기자회견, 광화문 광장에서의 국내피겨 유망주 클리닉 행사,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마스터 클래식 참석, 광주 5.18 재단 방문, 반포영어센터 방문, 연세대 유스포럼 참석, 체육 인재육성재단 방문 등의 일정으로 꽉 차 있었다. 국내 TV와 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콴의 방한 행사들을 사진과 곁들여 자세하게 소개했으며 시청자와 독자들은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지켜봤다. 아마도 콴의 활동을 본  이들은 필자를 포함해 대부분 김연아의 미래 롤모델을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국내 스포츠 스타들에게는 다소 낯선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과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 등 일부 올림픽 스타들이 올림픽 유치와 IOC 홍보위원 등으로 일시적으로 활약한 적이 있지만 콴처럼 국가 홍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국가도 그렇고 스타 본인도 이러한 활동영역에 대한 인식과 마인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인 콴은 백인 여성들의 독무대였던 피겨스케이팅의 판도를 뒤집은 전설적인 스타로 김연아의 정신적 지주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피겨스케이팅은 카타리나 비트(당시 동독) 등 유럽 선수들이 세계 정상자리를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들은 유럽 백인들의 화려한 피겨스케이팅 연기를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 때 빙상담당기자였던 필자도 아시아인이 피겨스케이팅 세계정상에 오르는 것은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아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콴과 일본계 미국인 크리스티 야마구치, 일본의 이토 미도리가 떠오르며 백인 선수들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특히 콴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여년 동안 세계챔피언으로 군림하며 세계선수권 5회 제패, 전미선수권 9회 제패(8연패) 포함, 43회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아깝게 금메달을 차지하지 못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콴은 선수로서의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경기장 밖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11월 미 국무장관은 그녀를 미국 스포츠 최초의 공공외교대사로 임명했다. 이후 공공외교사절로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의 젊은이들과 스포츠와 교육, 리더십 등을 논의하고 있다. 2009년 1월에는 비만이 ‘공공의 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상 체육활동을 통한 미국인의 건강증진방안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체력 단련 및 스포츠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어릴 적 콴을 최고의 우상으로 꿈을 키웠던 김연아는 이 같은 콴의 롤모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선수로서 개인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장차 국가홍보를 위해 기여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지난 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1인자로 등극해 한국민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김연아에게 2월 예정된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챔피언의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은 선수로서 최상의 과제이다. 하지만 개인적 관리와 함께 국가적인 대사를 위해 활동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도전에 나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과 국가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은 평창,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으나 평창과 뮌헨 두 도시 중 하나가 유력한 상황이다. 특히 뮌헨은 지난 해 왕년의 피겨 스타 카타리나 비트를 유치위원회 23명으로 구성된 뮌헨동계올림픽 유치이사회 회장으로 위촉했다.

따라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대사 1호인 김연아는 당장 이번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경쟁과 함께 카타리나 비트와 장외에서 치열한 홍보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이다.

또 김연아는 2011년 남아공에서 열릴 IOC 총회에서 결정될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가 끝난 이후에는 콴과 같은 국가홍보대사로서 본격적인 역할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김연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국가 당국의 협조와 지원으로 콴 롤모델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Love America’를 강조하는 콴처럼 김연아가 세계 방방 곳곳에서 한국의 국가브랜드와 위상제고를 위해 ‘Love Korea’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간외교관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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