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이라는 표현이 정당 지도자의 입에서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한 언론사에서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라는 극한 기사 제목까지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놓고 정당 간, 세대 간, 이념 간 그야말로 전쟁에 가까운 치열한 공방이 있었던 때는 아마 없었던 것 같다. 부정적으로 보면 한심한 나라요, 긍정적으로 보면 역사 인식의 제고를 알리는 신호로도 볼 수는 있겠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역사를 위한 싸움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의도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가의 문제다. 진정한 역사를 위한 싸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왜곡, 독도·대마도 등의 영토왜곡을 넘은 침략에 대해서는 민족의 정체성이 달려 있음에도 양보와 침묵과 배려로 일관하면서도 국정화에는 전쟁을 해서라도 이기겠다는 상반된 논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우선 이러한 극단적 역사관을 갖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역사관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봐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인문학적 가치관의 훼손이 가져온 산물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기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혼이요 뿌리다. 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거며, 내일을 잇는 다리요 미래 그 자체다. 역사와 문화 나아가 종교는 사람의 근본을 형성해주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주는 데 가장 기본적 학문이다. 이 같은 인문학적 소양의 결여는 왜곡된 역사교육의 결과며, 이는 식민사관과 사대사관과 같이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된 역사교육에서 기인된 것이라고도 봐야 한다.

역사 그 자체가 아닌 목적을 위한 획일화된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같이 획일화된 교육의 결과는 또 다른 획일화 교육을 낳게 된다. 따라서 역사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에 의한 논리와 공방에 함몰돼선 안 된다. 역사는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일이며, 나아가 아는 역사를 바로 세워가는 과정이 또한 역사가 돼야 한다.

역사 또는 역사의 진실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으로 남길 뿐이며, 후대가 판단할 몫이다. 그러므로 여지를 남겨 둘 수 있는 기록의 여유가 필요하며 다양성 또한 인정받아야 한다.

국정이냐 검정이냐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대표적 역사서가 있다.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가 있고, 삼국사기가 나온 지 136년 뒤 삼국사기가 놓친 이야기들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국가 최고 승려인 일연이 지은 국보 306호인 ‘삼국유사’가 있다. 한마디로 삼국사기는 오늘날로 말하면 국정인 국사서로서 현재 전해지는 역사책 가운데 그나마 고대사를 알게 하는 검증 받은 대표적 역사서다. 하지만 김부식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후손으로 친 신라적이며, 뼛속까지 유학자라 할 정도로 친 중국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또 유학은 현실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므로 현실과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신화나 설화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은 승려의 신분으로 신화나 전설을 많이 포함시킴으로써 일종의 야사의 범주에 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군의 역사를 실어 민족의 시조와 유래를 추가하는 등 삼국사기가 전하지 못한 많은 역사적 사연을 알게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연은 삼국사기를 국사서로 인정하고 존중했으며, 다만 삼국사기에 생략된 내용을 추가 보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다른 책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삼국유사가 비록 야사의 범주에 속했다 할지라도 일제 강점기에 작가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유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삼국유사를 고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이 어떤 뿌리와 토양과 정신과 문화를 가졌는지를 후대가 가늠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역사서로 평가 받고 있다. 극단적 대립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역사서와 그 역사서를 집필한 학자의 역사관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획일화된 역사관은 역사가 아니라 우상이다. 정략적 목적도 특정한 이념의 편도 아닌 대부분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면 제고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국정교과서를 주장하고 고집하는 명분 중 하나가 있다면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역사 교육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는 말을 남겼다. 도전 없는 역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그 도전에 대한 응전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교과서 논란 또한 새로운 역사를 써가기 위한 과정 속에 겪는 진통이고 나아가 역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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