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은 실제로 의적이었을까? 소설이나 민담이 아닌 사료를 바탕으로 한 의적들의 충격적인 실체가 재조명된다. 이 책은 단순히 영웅들이 만들어진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들이 ‘제조’된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의적’이라는 단어에 반드시 녹아들어가야 하는 것은 ‘민본 사상’임이 틀림없다. 시대적 요구와 민심의 지지를 끌어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비로소 ‘의적’이라고 지칭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적은 파탄 난 민생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메시아로 등장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의적’은 곧 기존의 부패한 체제를 뿌리 뽑을 수 있는 ‘혁명가’의 위치에 서게 된다.

과연 홍길동은 의적이나 혁명가였을까? 이 책의 저자는 “실제 홍길동은 도적의 우두머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사료에 의하면 홍길동은 강도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밤에 몰래 활동하던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정3품 무관직첨지 행세를 하던 간 큰 강도였다. 심지어 고위층에 연줄을 대고 그 배경으로 도둑질을 해 왔다.

선조21년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의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욕으로 사용됐다”는 글이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악명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홍길동의 의적집단 ‘활빈당’의 두목이었다는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연산군 때 이후 250여 년이 지나자 ‘도적’ 홍길동은 ‘의적’ 홍길동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이미지 변화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이끌었다.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인물이 동일인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백성들은 ‘의적’ 홍길동을 통해 큰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를 숙청해 그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토피아 ‘율도국’의 등장은 백성들의 소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그렇다면, 소설에 나타난 의적 홍길동은 과연 ‘혁명가’였는가?”

답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이다. 비록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혁신적인 일들을 해내지만 결국 전통적인 유교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만일 위태로운 때가 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인군을 돕겠다”며 국왕과 왕조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을 읊조리는가 하면, ‘율도국’ 역시 철저한 세습 왕조체제에 불과했다. 결국 허균의 홍길동전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유럽의 시민혁명과 비견하는 것은 커다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자칫 공허한 말장난으로 떨어질 수 있는 ‘영웅’들의 실체를 객관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 각색된 이미지를 배제하고, 당시를 살아간 백성들의 관점에서부터 출발하는 접근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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