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기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


종교는 역사적으로 늘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고뇌했다. 한 쪽은 사회의 주류에 편승해 기득권을 누리는 길이었고, 다른 한 쪽 길은 사회 모순을 보듬고 치유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주류의 길에 들어선 종교는 짧은 순간 달콤함을 누렸지만, 나중엔 그것이 생존을 위협하는 독이 되었다.

비주류의 길은 적잖은 갈등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지만, 오히려 종교를 성장케 하는 약이 되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오늘날 주류 종교는 모두 이 비주류의 길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한국 종교사에서도 불교의 영욕은 물론이거니와 산업화 시기 개신교의 성장, 민주화운동 시기 가톨릭의 성장은 종교가 어떤 사회적 몫을 감당했을 때 지지 받고 성장할 수 있는지 잘 말해준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주류는 자본이다. 이미 국경을 넘어선지 오래인 자본의 활약 탓에 생태 파괴, 양극화, 전쟁과 테러, 소비주의, 만연한 질병 등은 지구촌 전체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시장을 신봉하는 이들은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 규제를 제거하고, 시장의 자율 경쟁에 맡기면 최선의 세상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물론 자유로운 경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과잉생산으로 곡물이 폐기처분되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한 해 6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사하거나, 영양실조가 원인이 되어 죽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시장만을 금과옥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인간 상호간의 존엄을 유지할 최소한의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시장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치유해야 할 한국의 종교는 오히려 시장만능주의, 그것도 이상한 시장주의의 진원이 되고 있다. 사찰 불사를 위한 재정마련을 내걸며 천도재 싹쓸이 논란에 휩싸인 한 불교 사찰에서부터 달랑 투시도 한 장으로 3백억 원이 넘게 소요되는 피정센터를 짓겠다는 인천의 한 가톨릭 교회, 2천억 원이 넘는 초대형 교회를 짓겠다고 나선 강남의 한 개신교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류종교 안에는 한물간 낯 뜨거운 시장주의가 넘쳐난다.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은 소수의 비판에 대해 그들은 강변한다. “내 돈으로 내가 짓겠다는데, 내가 노력해 내가 키우겠다는데 왠 참견이냐...”고. 마치 못난 놈이 남 잘되는 꼴 못보고 질투한다는 식의 반응이어서, 언론도, 종교인도, NGO도 조심스레 한마디 던지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대단한 착각이다. 국가적 특혜와 지원 하에 성장하였고, 여전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종교단체들이 마치 자신들이 공정한 경쟁 하에서 성장한 것처럼, 시장의 승리자인 것처럼 강변하는 현실은 몰염치하기까지 하다.

종교 안에는 그 어떤 사회집단보다도 사회변혁을 위해 힘써온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 양식있는 종교인들조차 적자생존은 불가피하다는 자기검열에 걸려 입을 봉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만이 참된 것이고, 약자가 죽고 강자가 살아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외눈박이 시장주의에 거룩한 부처님, 예수님의 가르침이 종교 내에조차 별 뾰족한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에 이젠 맞서야 할 때다.

진정한 진보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과 싸운다. 이기심, 두려움, 패배감, 이런 자기 내부의 적과 싸우면서, 타인의 심연에 있는 작은 긍정의 씨앗을 북돋워 ‘우리’를 만들어야 진정한 진보다. 어렵게 비주류의 길을 지켜온 한국의 종교인들에게서, 진정한 진보가 시작되는 201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일깨워 종교라는 중요한 터전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 싹트는 한 해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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